기본소득 vs 신복지체제..이재명·이낙연의 싸움이 아니다
전선은 '복지확대론 대 재정중심주의'
차기 대선주자 경쟁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주 구도로 흘러가면서 이 지사에 대한 경쟁 주자들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지사의 ‘기본시리즈’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잇따라 비판적 논평을 내놓는 것이 단적인 예다. 여기에 이 대표가 최근 자신의 복지론을 체계화한 ‘신복지체제’의 얼개를 공개하면서 복지를 둘러싼 정책 대결 양상도 짙어가고 있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우파 기본소득’이 아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지사와 이 대표 모두 저소득층에 집중해 시혜적 지원을 베푸는 보수적 복지 패러다임을 넘어 ‘보편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의 ‘신복지체제’에는 아동수당·보편적 청년수당·기초노령연금 등 ‘부분 기본소득’으로 불릴만한 현금성 수당이 강조되고 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 역시 기존 복지제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기본소득의 점진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장기적 청사진은 다를 수 있지만, 중·단기적 추구 지점은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우선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복잡한 복지제도를 정리해서 돈으로 나눠주고 끝내자”는 식의 ‘우파 기본소득’과는 다르다. 복지의 총량을 키우고 기존 복지제도를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규모의 지역 화폐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 지사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복지확대와 기본소득 도입, 둘 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며 “(이 대표의 신복지체계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머지않아 실현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라고까지 말한 이유다.
이 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 알려진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결코 기본소득이 모든 정책의 근간이라거나 이를 위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기초 생활을 보장할 만큼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충분하지 않더라도 기본소득을 현행 복지제도에 추가로 얹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의 수혜자에게 ‘자활 의지가 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입증하기를 요구해 자괴감을 안기는 기존 복지제도와 달리, 소액일지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복지=보편적 권리’라는 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게 ‘이재명식 기본소득’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얼마를 주느냐’보다 ‘어떻게 주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낙연 ‘신복지체제’도 기본소득 요소 포함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신복지체제’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누가 더 약자인가’를 국민 스스로 입증해 지원을 받는 시혜적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다만 ‘신복지체제’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존 복지제도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리고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보편 권리’로서의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에 가깝다.
‘신복지체제’는 기존 복지제도가 놓쳐온 다양한 복지 수요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득, 돌봄, 의료, 주거, 고용, 교육, 문화, 환경, 안전 등 국민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에 걸맞는 ‘생활 최저선’을 설정하고 이를 국가 책임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정책의 방점이 사회수당보다 사회서비스에 맞춰져 있다는 점은 다르다.
하지만 ‘신복지체제’에도 사실상 기본소득의 요소가 녹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만 18세까지 아동수당을 확대하고 청년수당을 도입하는 부분 등은 ‘부분 기본소득’으로 볼 여지가 크다. ‘신복지체제’의 바탕이 된 ‘보편적 사회보호체계’를 연구한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신복지체제에서는 아동·장애인·노인 등에게 기본소득보다 더 두터운 소득보장 지원이 나간다. 경제활동 연령층인 청년과 중·장년에 대해서는 일괄 기본소득을 지급하진 않지만, 최대 3년 동안 보편수당을 받을 수급권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이재명·이낙연은 ‘재정중심주의’와 싸워야
전문가들은 지금의 정책 대결은 ‘이재명 대 이낙연’의 대결이 아니라 ‘복지확대 세력 대 재정 당국’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기본소득론’과 ‘신복지체제론’ 모두 한국 정치사에서는 처음 재정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대결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재정’이란 명분으로 사회정책의 확대를 제한해온 재정당국의 주도권을 약화시키는 게 이 대표와 이 지사가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라는 얘기다.
최현수 연구위원은 “집권여당 안에서 재정이 아니라 사회정책을 중심에 둔 정책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내부 정치의 프레임에 묶여 이 점이 부각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회고록 <진보의 미래>에서 “내가 잘못했던 것은 (재정 당국이)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여기에서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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