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설이후 집값 더 오를 것, 지금 살 때는 아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부동산 시장의 최대 관심은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공공 주도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설 전후로 TV·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서울 도심에 충분한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기 때문에 집값 안정을 넘어 현 수준보다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가 국내 부동산 전문가 6명을 상대로 ‘설 이후 주택시장 전망’을 조사한 결과, 5명이 “2·4 공급 대책에도 올해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정부 대책이 주택 수요자의 ‘패닉 바잉(공황 구매)’ 심리를 잠재울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단기적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는 현 시장에서 추격 매수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추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고, 금리 인상이나 정부의 추가 규제 등 정책적 변수가 많아 자칫하다가 고점(高點)에 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집 살 때 아니다”
본지 조사에 응한 전문가 대부분이 “지금은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좋은 시점이 아니다”라고 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정부의 공급 대책 발표로 인해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심리가 확산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가 시작되는 6월 1일을 앞두고 절세(節稅) 매물이 나올 수 있다”며 “대출 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있어 빚을 내서 무리하게 집을 사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부동산 시장 과열이 너무 심하고, 코로나 사태 장기화 등 거시경제 측면의 악재가 여전한 데다가 정부가 추가 규제를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며 “3기 신도시 등 신규 주택이 주택 시장에 풀릴 때까지 (매수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지목한 시중 유동성 확대와 가구 수 증가 추세가 단기간에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며 “무주택자는 당장에라도 현금 보유 여력에 맞춰 집을 장만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2·4 대책, 단기 효과 없을 듯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역세권·준공업지역 등 도심 고밀 개발, 공공 주도 재건축·재개발, 신규 공공택지 지정 등을 통해 전국 83만 가구, 서울 32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주택 시장에 ‘획기적인 공급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실제로 입주 가능한 주택이 공급되기까지 시간이 5년 이상 걸려 단기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고, 현실성도 다소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이번 대책은 개발 가능한 민간 땅에 과거 유사한 사업의 참여 비율을 대입해 추산한 수준”이라며 “실제로는 얼마나 집이 지어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수석연구위원은 “주택 공급 정책은 양보다는 속도와 질이 더 중요하다”며 “2·4 대책은 구체적인 정보가 없고, 실현 여부도 불투명해 당장 집값 안정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4 대책을 통해 시장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공공 개발이 이뤄질 지역은 앞으로 집을 사도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하므로 투자 수요가 끊길 것”이라며 “개발 예상 지역보다는 완공된 주택, 특히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셋값부터 안정시켜야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 작년 하반기부터 계속 들썩이는 전세 시장부터 안정시키는 게 급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지난해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법이 시행되고서 지난 1월까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7.8% 급등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상승률(3.1%)의 5배가 넘는다. 양지영 소장은 “집값 안정을 위해선 전세 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2·4 대책에 전세 관련 내용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며 “임대차법을 원상 복구하거나 의무 거주 요건을 완화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교수는 “임대차법을 원상 복구할 수 없다면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라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무 교수는 “전셋집을 시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다주택자의 순기능을 정부가 인정하고,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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