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현대차 '애플카' 협업 무산..'갑을' 관계 주도권 싸움 탓?
‘나 홀로 개발’ 애플, 협업 파트너로 부상했던 현대차
완성차 업체와 협업설, 자율차 상용화 임박 관측도
선 긋기 나선 현대차 "애플과 협의 진행하고 있지 않다"
연초부터 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의 협업 소식이 세계를 흔들었다. 나 홀로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해왔던 빅테크 애플이 현대차와 기아 등 현대차그룹과 협업을 추진한다는 소문은 콧대 높던 애플이 현대차그룹의 기술력과 인지도를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톱5’ 수준의 완성차 생산 설비와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속도를 내는 점도 애플에는 부담이다. 하지만 ‘갑을’ 관계에 익숙한 양측으로서는 이견차를 좁히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콧대 높던 애플이 점찍었던 현대차
애플은 지난 2014년 ‘프로젝트 타이탄’을 출범해 자율주행차 개발을 홀로 연구해왔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 완성차 업체와 협업이 언급되는 것은 시장 진출이 임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애플이 오는 2024년 전기차 생산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애플이 그동안 자체 개발의 한계를 경험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베일에 싸여있는 애플과 달리, 글로벌 빅테크와 자동차 업체의 합종연횡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MS는 제너럴모터스(GM), 아마존은 도요타, 구글 웨이모는 볼보 등과 협업 중이다. 중국 알리바바 역시 자율주행 개발을 위해 상하이차와 손을 잡았다. IT업체 가운데 전기차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로 꼽히는 소니는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 ‘CES 2021’에서 전기차 비전S 시제품의 주행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애플과의 동맹 중 하나로 현대차가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 등을 합쳐 세계 5위권의 완성차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세계 4위다. 현대차·기아의 세계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7.2%로,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17.5%)를 제외하면 폭스바겐그룹(12.9%), 르노·닛산·미쓰비시(8.2%)에 이어 전통 완성차 업체들 가운데에서는 3위에 해당한다. 3위와 격차도 불과 1%p(포인트)에 불과한 상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5년까지 23종 이상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가 2025년까지 총 12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연간 56만대를 판매한다. 기아는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2026년까지 전용 전기차 7종을 출시, 총 11개의 전기차 제품군을 구축해 2030년까지 연간 160만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전기차 시대…‘갑을관계’ 흔들다
애플과 협업은 애플의 브랜드 인지도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수월하게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으로 꼽힌다. 아직 초기 시장인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실현해 대중화도 선도할 수 있다.
현대차는 미래차 전쟁에서 빅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자체 운영체제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보다 더 ICT다운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애플은 과거 PC 사업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OS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이는 미래에 내놓을 애플카에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애플은 아이폰 디스플레이를 차량 화면에 옮겨 볼 수 있는 ‘애플 카플레이’를 개발했고, 최근 출시하는 차량 대부분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에 탑재될 인공지능(AI)은 물론 차량용 운영체제(OS)도 갖췄다. 현대차로서는 자체 개발 중이던 OS가 표류하게 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최근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기존 자동차 부품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심장 역할을 해오던 엔진이 배터리로 전환되면서 완성차 생산의 주도권 역시 배터리 업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수평적 관계에 익숙했던 완성차 업계로서는 ‘갑을’ 관계가 바뀐 것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술력을 인정 받은 이들 제품을 받기 위한 완성차 제조사들은 줄을 선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051910)의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점유율 23.5%로, 2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삼성SDI(006400)와 SK이노베이션(096770)의 시장 점유율은 5.8%, 5.4%로 5위와 6위를 기록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 합계는 34.7%에 달한다.
한편 현대차와 기아가 공시를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재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월 8일 현대차는 "다수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지만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이후 2월 8일 공시에서는 기존 공시한 내용과 함께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전기차’라는 단어가 빠진 만큼 일부 영역에서는 계속해서 협의를 진행 중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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