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만 덩그러니..껍데기만 남은 현대인의 초상

전지현 2021. 2. 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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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디지털 펜화전 '유령패션'
"부와 권력의 상징은 패션"
인터넷서 의류 화보 골라내
휴대폰 앱으로 사람 지우고
옷 망가뜨리는 작품 만들어
허무한 도시 문명 비판
사람은 없고 옷만 덩그러니 서 있다. 빈껍데기만 남은 인생을 은유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형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초상일까.

붓 대신 스마트폰 펜으로 그린 신작 '유령패션' 50점을 전시한 안창홍 작가(68)는 "인간의 유대관계가 단절된 도시 거리에 화려하게 물결치는 옷들이 허깨비 같았다"며 "물질사회의 정점인 패션에서 공허함을 봤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에서 열린 디지털펜화전 '유령패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 가치를 곱씹어보기 위해 작가가 던진 화두다.

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난 그는 "인간이 자기를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패션이며 부(富)와 계급의 상징이기도 하다"면서 "인터넷에서 감각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패션 사진을 골라내 인물을 지우고 옷을 망가뜨렸다"고 설명했다.

육신이 빠져나간 옷들은 허무를 표출한다. 옷 위에 물감이 흘러내리거나 튄 것처럼 그려 허망함을 배가시킨다. 인간 욕망의 잔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령패션`. [사진 제공 = 호리아트스페이스]
지난해 6월부터 갤럭시노트에 맹렬하게 그려온 '유령패션' 시작은 1979년작 '인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잡지 패션 사진에서 인체를 오려내고 콜라주 기법으로 화면에 붙이고 유화 물감으로 칠했다. 그때는 물질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디지털 빛을 이용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도시문명 비판이라는 주제는 같다.

재료와 그리는 방식에 호기심이 많은 작가는 디지털 펜으로 이룬 결과물에 만족을 표했다. "화가는 형태로 이야기하고 예술은 소통을 위해 존재해요. 사람들에게 깊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죠. 그중 하나가 디지털 펜화이며 앞으로 어디로 튈지, 발전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이번 전시작에 흡족하고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핸드폰 작업장면
그는 30여 년 지켜온 양평 작업실에서 하루 평균 3~4시간 자면서 디지털 펜화를 그렸다. 뭐든지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그림값이 비싼 생존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4)의 아이폰 드로잉도 그를 자극하는 동력이 됐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배(호크니)도 하는데 못할 게 뭐 있나. 수시로 머릿속에서 번득이는 게 많아서 메모를 많이 해뒀어요. 100만원 넘게 주고 산 스마트폰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방법이기도 하고요. 휴대폰은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서 전철 안에서나 산책하다가, 자다가도 일어나 스케치를 할 수 있죠. 2019년 아라리오갤러리서울, 경남도립미술관 대형 전시 설치 작품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투자해 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정신을 가다듬는 일환으로 디지털 펜화를 그렸어요."

안창홍 유령패션
정평이 난 그림 실력으로 늘 자신만만한 그는 "호크니대로 안창홍대로 서로 이룬게 다르다"고 했다. "호크니는 자기 작품의 재현이에요. 늘 그리던 풍경화와 인물화를 디지털로 옮겨왔죠. 하지만 나는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또 다른 조형언어로 표현했으니까 호크니와 근본적 뿌리가 달라요."

기존 패션 사진을 활용하는 데 저작권 문제는 없을까. 그는 "변호사와 상담했는데, 전혀 상반된 조형 어법을 찾아서 큰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답했다.

유령패션
유령패션
전시장에는 영상 작품을 판화지에 인쇄한 에디션 작품, 영상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디지털액자가 걸려 있다. 영상 원본의 이미지가 완성되는 과정, 원하는 완성 작품 이미지를 골라서 디지털액자에 소장할 수 있다. 세계적인 디지털액자 기업인 '넷기어뮤럴 디지털 캔버스'와 협력한 액자 겉면에 작가의 서명이 있고, 뒷면엔 드로잉을 그려준다. 작품이 인쇄된 엽서 판매 수익금은 아프리카 말라위 어린이를 위한 미술재료 지원비로 사용된다.

쉼표가 없는 작가는 요즘 디지털 펜화를 물감으로 풀어내는 유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3월 13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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