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의장 지인들이 말하는 기부 5조원 뒷얘기
지난 8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히자,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 나온 평가다. 세간에서는 천문학적인 액수(현재 주식 가치 기준 5조원 이상)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사회환원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도 규모 못지 않게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재벌 기업의 경우 총수들이 사회 기여를 위해 재단설립이나 현금기부 등 방식을 직접 결정한 뒤 외부에 공개해왔다. 반면 김 의장은 먼저 사회 환원의 뜻을 밝히고, 이를 어떻게 써야할지 카카오 내외부의 뜻을 모으고 공개적으로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김 의장은 사내 메시지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크루(카카오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지속 공유드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점 기존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른 시일 안에 내부 간담회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같이 고민해보자"는 김 의장의 방식은 그가 카카오 내외부에서 수차례 강조해온 문제 해결 방법론과 닮았다. 그는 사회 문제 해결의 주체로 '기업'을 강조해왔고, 다수가 모이는 '플랫폼'의 중요성도 설파해왔다. 김 의장은 지난 2019년 카카오 사회공헌재단인 '카카오임팩트' 강연에서 "플랫폼을 만들어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문제정의를 올바르게 해두면 해결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카카오톡 10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선 "몇 년 전부터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 기업이라는 것을 자주 얘기해왔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카카오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조금 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사회 환원을 놓고 최근 제기된 경영권 승계 의혹이나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추진 등 외부 요인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지만, 김 의장과 오래 함께 한 지인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김 의장의 사회 환원은 급조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의 언행과 행적을 보면, 오랫동안 사회 환원을 고민해왔고 일부는 꾸준히 실천해왔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현금 72억원, 주식 약 9만4000주(약 152억원)를 기부했다. 카카오 고위 관계자는 "김 의장의 사회 환원은 기정 사실이었고, 방식이나 시기를 오래 고민해온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김 의장은 코로나19로 사회 전반에서 문제가 발생한 지난해 측근들에게 수조원대의 구체적인 기여 방안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의 '보은 의식'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어린 시절 부모 외에도 누나 둘, 남동생, 여동생,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 부모는 밥벌이에 바빠 김 의장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온 김 의장이지만, 초등학교 첫 성적표는 전부 '미'나 '우'였다. 선행 학습은커녕 유치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김 의장은 유독 교육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 주요 기부처인 아쇼카 한국도 젊은 세대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교육 혁신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재단이다. 그가 최근 약 1450억원 상당의 카카오 주식 33만주를 직계 가족을 포함한 친인척들에게 증여한 것도 유년 시절 도움을 받았던 기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두 번의 창업으로 모두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도 이번 사회 환원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김 의장은 1998년 한게임을 창업했으며, 이해진이 창업한 네이버와 합병한 뒤에는 대표를 맡기도 했다. 2009년 네이버를 떠난 뒤에는 카카오의 전신 '아이위랩'이 2010년 카카오톡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제2의 창업까지 성공했다. 현재 네이버, 카카오 모두 국내 시가총액 1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 의장은 사회 환원에 대한 염원이 강해졌다고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축적할 수 있는 부의 수준을 넘었으니, 나머지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공적인 일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의미에 천착하는 이유로 "누가 저한테 그랬다. 웬만한 부자는 자기 힘으로 될 수 있지만 억만장자는 하늘이 내려 주시는 거라서 그 뜻을 잘 새겨야 한다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얘기였는데 저한테는 굉장히 와닿았다"며 "제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를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덤인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마음에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이 너무 모범 답변 같다는 지적에 "두 번째 도전이라 그렇다. 처음 도전할 때는 사회 문제 해결에 큰 관심도 없고 별로 하지도 못했다. 네이버가 상장했을 때 1600억원 규모였는데 제 관심은 오직 회사를 키우는 것이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며 "두 번째 회사다 보니 그 때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키우는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니까 사회적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아쉽다. 회사 성장은 임지훈(카카오 전 대표)이라는 젊은 CEO를 영입해 많이 맡겼다. 저는 회사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개인적으로 풀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이 성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나 자주 인용하는 시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김 의장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다. 그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자주 인용한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구절이다.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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