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696>에틸렌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바나나 색깔은 초록색입니다. 그런데 유통과정을 거쳐 마트나 동네 슈퍼 등에서 만나는 바나나는 먹기 좋은 노란색입니다. 바나나를 노랗게 익혀준 물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에틸렌'입니다. 에틸렌은 식물이 만들어 내는 '식물 호르몬'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식물을 자라게 하는 에틸렌은 사실 어떤 물건이든지 뚝딱 만들어 내는 석유화학계의 핵심 원료로 더 유명합니다.
에틸렌이 흔히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울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석유나 천연가스에서 정제해 얻는 기본 원료로써 그 활용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에틸렌은 주변에 흔한 플라스틱, 비닐부터 시작해 합성고무, 각종 건축자재, 접착제나 페인트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석유계 기초 유분입니다.
에틸렌은 통상적으로 석유화학산업 규모를 나타내는 '기준' 혹은 '지표'로 많이 활용됩니다. 세계적으로도 에틸렌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석유화학산업 규모가 크다는 뜻이지요. 에틸렌은 구조가 간단해 석유화학산업의 다양한 원천 원료로 활용되고 석유화학의 기본 원료 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에틸렌에 대해 알아봅니다.
Q. 에틸렌은 어떻게 발견됐나요.
에틸렌 발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69년, 독일의 화학자 요한 요아힘 베처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그는 에탄올을 황산으로 가열해 에틸렌 가스를 얻었습니다. 이후 1794년 네덜란드 화학자들은 에틸렌 기체를 염소와 반응시켜 1,2-디클로로에탄 액체를 얻었습니다. 이때 이들은 에틸렌을 '기름을 만드는 기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 사람들도 과일을 숙성시키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에틸렌의 존재는 어렴풋이 알고 활용해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화과를 빨리 익히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냈고, 중국의 농부들은 폐쇄된 방 안에 배를 놓고 향불을 피워 에틸렌을 촉진했습니다.
식물 호르몬으로써 에틸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러시아의 과학자 드미트리 넬류보프입니다. 넬류보프는 1800년대 말, 실험실에서 완두콩을 키우면서 당시 불빛으로 사용하던 석탄 가스에서 나온 에틸렌 때문에 완두콩이 '특이하게 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1934년 영국의 과학자 리차드 게인은 사과가 만들어 낸 에틸렌을 분리해 내면서 최초로 기체 식물 호르몬을 증명해냈습니다.
Q. 에틸렌은 어디서 나올까요.
에틸렌은 상온에서는 무색의 기체이나 화학식으로 보면 단순한 탄화수소(C2H4)입니다. 탄소 2개가 이중결합돼 있고 하나의 탄소에 수소가 2개씩, 총 4개로 이뤄졌습니다. 식물이 합성하는 에틸렌도 있지만, 원유에서도 나올 수 있고, 또 천연가스 속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원유를 정제해서 얻은 '나프타'속에서, 그리고 천연가스에 들어있는 '에탄'에서도 에틸렌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Q. 에틸렌 생산 방법은.
에틸렌을 생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원유에서 얻는 방법과 가스에서 얻는 방법입니다. 많은 공장에서 주로 쓰는 방법은 원유를 정제해서 얻은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얻는 방법입니다. 나프타는 탄소를 다섯 개에서 열두 개까지 가지고 있는데, 이를 아주 뜨거운 열(섭씨 800도 이상)을 가해 끊어줍니다.
이 과정에서 에틸렌뿐만 아니라,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 등 기초 유분도 함께 생산됩니다. 나프타분해설비 안에서 열분해공정, 급랭 공정, 압축 공정, 정제공정을 마치면 마침내 에틸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스에서 에틸렌을 생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천연가스의 약 4~16%는 '에탄 가스'입니다. 에탄에 열을 가하면 에틸렌과 수소로 쪼개지는 '탈수소반응'이 일어납니다. 남은 수소는 모아서 비료 제조하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Q. 에틸렌으로 무엇을 만드나요.
에틸렌으로 일상생활에 쓰이는 비닐과 플라스틱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듭니다. 에틸렌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물질은 폴리에틸렌(PE), 폴리스티렌(PS), 폴리염화비닐(PVC),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입니다.
뿌연 느낌의 불투명한 비닐봉지, 음식을 덮는 랩처럼 우리가 흔히 '비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물건들은 대부분 폴리에틸렌 중에서도 '저밀도 에틸렌(LDPE)'입니다. 또 그보다는 딱딱한 재질의 화장품 용기나 페트병 뚜껑, 장난감 등에 쓰이는 것은 '고밀도 에틸렌(HDPE)'입니다. 에틸렌과 중합하는 물질, 또는 공정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 것 일뿐, 둘 다 폴리에틸렌입니다.
컵라면 용기와 스티로폼은 에틸렌과 벤젠을 기초로 만든 폴리스티렌입니다. 에틸렌과 벤젠, 산 촉매를 반응시켜 에틸벤젠을 만든 뒤, 여기에 수소를 하나 빼서 스티렌으로, 스티렌을 중합해 폴리스티렌(PS)을 만듭니다. 폴리스티렌은 범용 플라스틱으로 가구,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에도 사용됩니다.
『미래가 온다, 플라스틱』 김성화·권수진 지음, 와이즈만BOOKS 펴냄
이 책은 지구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지나 플라스틱 시대라고 불린다. 그만큼 플라스틱이 없는 우리 생활은 상상할 수 없고, 지구는 이렇게 플라스틱 행성이 되어 버렸다. 사실 플라스틱의 미래는 정말 암담하다. 무분별하게 플라스틱을 써대는 인간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자연은, 그동안 계속 경고를 보내왔고, 우리는 이제야 겨우 놀라 허둥거리고 있다. 어렴풋이 플라스틱의 실체를 눈치챘고, 그것이 우리 몸에, 우리 땅에, 우리 바다에 그리고 우리 공기에 어떤 습격을 가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꿈꾸는 건, 탈플라스틱 시대다.
『케미컬 마케팅 화학 산업을 위한 B2B 마케팅』 전병옥 지음, 알렙 펴냄
이 책은 산업재 시장, 즉 B2B 산업의 마케터들을 위한 기본 툴이자 핵심 전략 킷을 담은 책이다. 화학 산업계에서 연구원과 현장 실무를 수행했던 전병옥 소장의 이론과 실기가 충실히 녹아나 있는 책이다. 전병옥 소장은 삼성전자에서 화합물 반도체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이스트만 화학, 사빅 등 세계적인 화학 회사에서 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했다. 이후 화학제품의 고객 개발 방법론과 녹색 화학 혁신에 관심을 두고, 화학 산업에 특성화된 B2B 마케팅 방법과 체계를 수립하고 있다. 책은 실무 과정에서 많이 접하고 자문하게 되는 질문으로 구성돼, 필요할 때 적절히 참고할 수 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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