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인간 유전자 지도 공개 20년 '슈퍼스타 유전자' 톱8
국제학술지 ‘네이처’ 2001년 2월 15일자 표지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모자이크처럼 배열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표현했다. 1990년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그리겠다며 시작된 다국적 공동 연구 프로젝트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Human Genome Project)’의 결과물인 인간 유전자 지도 초안을 이때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다.
당시 HGP 연구팀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의 유전자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은 2만6000~3만9000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HGP를 통해 완성된 인간의 유전자 지도 덕분에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규명되고, 이는 인류의 질병 예방과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주 ‘네이처’는 인간 유전자 지도 초안 공개 20주년을 맞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HGP 이후 ‘포스트 게놈’ 시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상동염색체 1~22번과 성염체 X와 Y까지 23쌍의 염색체 각각을 동심원처럼 나타내고, 동심원 위쪽으로는 HGP 이전의 유전자 연구 논문 수를, 아래 쪽으로는 HGP 이후 발표된 유전자 연구 논문 수를 표현했다. 고드름처럼 아래로 많이 뻗어 있을수록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네이처’는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1900~2017년 발표된 유전자 관련 연구 논문 70만4515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유전적 기원을 가진 질병이 1660편에서 다뤄졌고, 7712편은 신약 후보 물질로 개발돼 임상시험이 진행되거나 신약으로 출시됐다.
유전자만 보면 1990년 이전에는 성인의 헤모글로빈 단백질 중 하나로 당뇨병 등에 영향을 미치는 HBA1 유전자가 가장 많이 연구됐지만, 1990년 이후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퇴치에 대한 관심 등으로 면역세포인 T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인 CD4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옮겨갔다.
‘네이처’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진 ‘슈퍼스타 유전자’ 톱8도 뽑았다. 영예의 1위는 9232편의 논문에 등장한 TP53이 차지했다. 1979년 처음 발견된 TP53은 17번 염색체에 존재하며 암 발생을 억제하는 유전자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는 DNA에 결함이 생겨 손상되면 이를 찾아 죽이는 시스템이 있는데, TP53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은 DNA가 손상되면 이를 인식하고 복구하기도 하는데, 복구 되지 않고 손상된 DNA는 정상세포를 비정상적인 암세포로 바꾸고 결국 암 발생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 TP53은 암 억제 단백질인 P53을 만드는 데 관여하며, 암 환자에서는 TP53의 돌연변이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2위에는 TNF 유전자가 올랐다. TNF 유전자는 종양괴사인자로 지금까지 160여 종의 질병에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3위로 뽑힌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는 돌연변이가 생기면 폐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위는 근육에서 운동 후 대사를 조절하는 인터류킨6(IL6) 유전자가, 5위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A) 유전자가 차지했다. VEGFA 유전자는 노인성 황반변성에 관여하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이 유전자를 교정하는 성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6위는 치매 유전자로도 알려진 아포지단백E(APOE)가 차지했다. 19번 염색체에 있는 APOE 유전자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만들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생길 수 있다.
세포 성장과 분화 등에 관여하는 TGFB1 유전자가 7위에, 엽산 대사를 조절해 유방암, 대장암, 심혈관 질환 등에 관여하는 MTHFR 유전자가 8위에 뽑혔다.
이밖에 ADRA1A 유전자는 99종의 신약 후보 물질로 연구됐고, 이 중 5%는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이와 관련한 논문은 130편이 나왔다. 또 논문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유전자는 전체의 3%로 분석됐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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