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존심의 추락.. 할리데이비슨, 베이비붐 세대 퇴장에 경영난
베이비붐 세대에 인기 끈 할리데이비드슨, MZ세대엔 외면
전동화 전환 바람에도…전기 오토바이, 2019년에야 출시
많은 남성의 로망으로 여겨지던 할리데이비드슨이 최근 몇 년간 판매 감소에 시달리더니 지난해 코로나 사태 여파로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할리데이비드슨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 매출액은 32억6400만달러(약 3조6000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29% 감소했고, 1억86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자 할리데이비드슨은 조직 효율화를 위해 7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적자 폭을 줄이는 데 그쳤다.
1903년 설립된 할리데이비드슨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본사가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고급 오토바이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할리데이비드슨 마니아는 전 세계에 포진해있지만,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온 가장 충성도 높은 고객은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한 대당 가격이 3만달러(약 3300만원)를 훌쩍 넘는 덩치 큰 할리데이비드슨을 기꺼이 구매했고, V트윈 엔진에서 나는 웅장한 배기음을 자랑삼아 교외로 질주했다.
하지만 베이비붐세대가 퇴장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경제를 새로 이끌게 될 MZ세대(1980~200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고가의 할리데이비드슨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고 배기음도 소음에 가깝다고 여긴다고 보고 있다. 라이더의 세대교체는 할리데이비드슨의 경영난을 초래한 직접적인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불 지핀 무역전쟁의 여파도 할리데이비드슨의 실적에 악재로 작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EU)과 경쟁적으로 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유럽에 모터바이크를 판매하던 할리데이비드슨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결국 회사는 생산시설을 미국 밖으로 옮기면서 당시 보복관세 조치에 따른 미국 기업의 생산기지 첫 해외 이전 사례가 됐는데, 이 역시 악수(惡手)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비난과 함께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모빌리티 시장에 불어닥친 전동화 전환 바람에 저항한 것도 할리데이비드슨의 실적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나다. 글로벌 전기오토바이 시장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회사는 내연기관 오토바이를 고집했다. 할리데이비드슨의 트레이드마크인 웅장한 배기음과 거친 주행 능력은 엔진으로만 구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동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 할리데이비드슨은 지난 2019년 전기 오토바이 라이브와이어를 출시했지만, 젊은 세대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할리데이비드슨은 거대한 엔진을 단 모터바이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속 주행 시 제트 엔진 소리가 나게 했지만, 전통적인 지지층은 물론 새로운 소비자를 잡는 데에도 실패했다. 기존 할리데이비드슨 모델과 비슷하게 한 대당 3만달러에 이르는 가격에도 혹평이 쏟아졌다. 시장에 출시된 많은 전기 모터사이클은 1만달러로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이브와이어는 배터리 충전 결함으로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다.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가 개막하는 환경에서 100년 넘는 역사를 지켜온 할리데이비드슨이 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분석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할리데이비드슨이 미국 대표 자동차 브랜드인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1908년 설립된 GM은 100년 동안 미국 자동차 산업을 주도했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고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 덕분에 겨우 회생했다.
그나마 다소 긍정적인 점은 할리데이비드슨이 일찍이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할리데이비드슨은 1980년대 초반 가와사키·혼다와 같은 일본 모터사이클 브랜드가 급성장하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지만, 1983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수입 모터사이클 관세를 10배로 올리며 자국 기업에 힘을 실어줬고, 동시에 할리데이비드슨은 자동화와 탄력적 노동 투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요타의 생산 기법을 도입하면서 기사회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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