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 달 일하는 날 22일→18일"..주 5일제 정착으로 손해배상액 산정방식 변경
[경향신문]
사망이나 부상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경우 법원은 ‘일실수입’의 개념을 적용해 배상액을 산정한다. 사망이나 부상 등의 재해 없이 정상적으로 일했다면 예상되는 미래 수입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법원은 노동자는 한 달에 22일 일한다고 보고 일실수입을 계산해왔다. 주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 확산을 반영해 한 달에 18일 일한다고 보고 배상액을 산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재판장 이종광)는 의료사고 피해자 A씨(60)가 의사 B씨와 병원장 C씨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B·C씨가 공동으로 A씨에게 총 7191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수는 A씨의 일실수입 5146만원, 위자료 1500만원에 치료비 등이 포함됐으며, B·C씨의 배상책임을 80%로 제한해 산정됐다. A씨가 당초 청구한 금액은 1억1522만원이다. A씨는 53세이던 2014년 2월 관절염 치료 수술을 받다가 의사 B씨의 과실로 신경이 손상돼 영구적으로 발목을 들 수 없는 장애를 입었다.
배상액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월 가동일수를 2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A씨가 무직 상태였기 때문에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이 산정된다. 1심은 경험칙으로 인정된 기존의 22일을 적용해 일실수입을 60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2심 재판부는 “오늘날 우리의 경제는 선진화되고 레저산업이 발달돼 근로자들도 종전처럼 일과 수입에만 매여 있지 않고 생활의 여유를 즐기려는 추세”라며 “월 가동일수 22일 경험칙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2003년 9월15일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주 5.5일 근무에서 주 5일 근무로 변경됐다. 관공서 공휴일 규정이 개정돼 법정근로일수는 줄고 공휴일은 증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가동일수를 월 22일로 본 경험칙에 의한 추정은 현재 시점에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으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용노동부 통계자료에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단순 노무 종사자 비정규 근로자의 가동일수 평균이 17.7일, 건설업 근로자의 가동일수 평균이 18.4일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월 18일을 도시 일용근로자의 가동일수로 정했다.
법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월 가동일수를 22일보다 적게 인정한 하급심은 존재했지만, 이번 판결은 근거를 기초로 자세한 논증을 거쳐 근본적으로 도시 일용근로자에 대한 월 가동일수 22일의 경험칙이 변경될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9년 2월 정년 연장과 고령 노동자 증가 추세에 따라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면서도 월 가동일수는 22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험업계는 노동시간 단축도 반영해 월 가동일수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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