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가대표는 방치하고 밥그릇 싸움만..누구를 위한 연맹인가

이정찬 기자 2021. 2. 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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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대한컬링경기연맹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이사 한 명이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연맹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는 회의 5일 전까지 안건을 명시한 뒤 소집해야 하지만 긴급성을 사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행했습니다. 이사회 의장인 회장도, 회장 직무대행도, 직무대행의 직무대행까지 모두 사퇴한 가운데, 긴급 이사회에서 다룬 안건은 딱 하나. 회장 재선거 일정이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 이후 석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대표팀 지원과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들에겐 오직 회장 선거만 '긴급'한 일이었습니다.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발을 동동 구르는 선수들을 걱정하는 사람이 연맹 집행부엔 없습니다. 평창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팀 킴'은 지난해 11월, 3년 만에 태극마크를 탈환하고도 소속팀 경북체육회와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 [단독] 팀킴, '동호인팀' 전락…무늬만 국가대표) 연맹의 관리 책임이 더 커졌지만 철저히 방치됐습니다. 연맹은 팀 킴의 임명섭 코치에게 자격 정지 징계를 내린 뒤, 이를 근거로 해가 바뀌도록 국가대표 승인 절차를 미뤘습니다. 지난달 선수들에 한해 국가대표 승인이 떨어진 뒤에는 코치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이유로 훈련 지원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가 다시 심의한 결과 임 코치에 대한 징계는 이달 초 취소됐습니다. 소중한 시간만 낭비한 꼴입니다. 베이징올림픽 예선을 겸하는 세계선수권대회가 급작스레 취소된 건 차라리 천만다행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195170&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남자팀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남자 대표팀은 고교 선후배로 이뤄진 동호인팀입니다. 대표 선발전에서 실업팀을 연파하고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의정부고 OB축구회가 프로팀을 연거푸 꺾고 FA컵에서 우승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낸 격입니다. 연맹의 지원이 더욱 절실했지만 역시 외면당했습니다. 지도자가 없다는 게 이유였는데, 그렇다면 연맹은 서둘러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나서야 했습니다. 최근에야 공모 절차에 들어갔는데, 이대로라면 4월 세계선수권 준비는 선수들끼리만 해야 합니다. 그마저 훈련 비용이 모자라 전전긍긍입니다. 연맹은 대한체육회의 승인 절차, 애매한 대표팀 선발 규정 해석 등을 이유로 댑니다. '핑계는 많고 의지는 없다'는 목소리엔 철저히 귀를 닫습니다.


2019년 8월, 김재홍 회장 취임 뒤 구성된 현 집행부는 실정(失政)만 거듭했습니다.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았고, 채용 비리를 저질렀으며, 국고보조금을 위법하게 사용한 점이 대한체육회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재홍 회장은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돌연 사퇴했고, 이후 부회장들은 서로 회장 직무대행을 하겠다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부회장만 3명입니다. 재정은 파탄 났습니다. 지난해 2월 대한체육회 지원을 받아 동계체전을 치른 뒤, 연맹이 주관한 대회는 졸속 개최한 11월 국가대표 선발전이 유일합니다. 각종 전국대회와 초중고대회는 치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 김재홍 前 컬링연맹 회장의 유체이탈 화법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5989673&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연맹은 코로나19 탓에 어쩔 수 없다고만 합니다. 하지만 경쟁국들은 더한 어려움 속에서도 방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개최국 중국은 평창에서 스웨덴 여자대표팀의 금메달을 이끈 린드홀름 감독을 선임해 후보 선수를 포함한 대표팀 합숙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코로나 상황이 훨씬 좋지 않은 유럽에서도 지난해 8월 이후 가능한 꾸준히 대회를 열어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를 돕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연맹이 올림픽만 고민할 때 우리 연맹은 '회장 선거' 생각뿐이었습니다. 집행부가 갈라져 서로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뒤엔 소송전에 돌입했습니다. 연맹 사무처는 선거를 공정히 치르지 못한 책임은 외면한 채 복지부동(伏地不動)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회장이 되거나, 그렇지 않을 거라면 관리 단체로 전락시키자'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내 밥그릇을 지키지 못할 거라면 남의 밥그릇이라도 깨겠다는 겁니다.

세계컬링연맹(WCF)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 여자팀은 세계 2위입니다. 2018 평창올림픽 '팀 킴'의 은메달, 2019 세계선수권 '팀 민지(춘천시청)'의 동메달, 2020 세계선수권 예선 전승 우승을 차지한 '컬스데이(경기도청)'의 쾌거가 합쳐진 결과입니다. 선수들은 세계 정상을 다투는데, 3류 행정과 4류 정치가 발목을 반복해 잡고 있습니다.

이정찬 기자jayc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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