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먹고도 '당당'..미국에선 '임금 절도'

고아름 2021. 2.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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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이 많지 않아요. 직원들 200만 원, 300만 원 정도 되는 것을…. (노동청에서) 2주라는 시간을 줬어요. 정리하면 그만이잖아요." (이OO/임금 체불 분양업체 대표)

"'안 주겠다'가 아니라 '너 노동청에 신고했지 않았냐. 노동청에 이야기해라.' 그게 끝이에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 (이OO/임금 체불 식당 업주)

취재 과정에서 임금 체불한 사장님 여러 명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노동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장님은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일을 제대로 안 해 손해를 봤다"며 노동자를 비난하기도 하고, 심지어 돈이 있지만 "괘씸해서 못 준다"고도 했습니다.

■ 임금 떼먹고도 당당한 사장님들…시간 끌수록 노동자만 손해

당장 월급 한 달 안 나오면 노동자들은 물론, 가족들의 생계까지 위협을 받습니다. 상황은 절박한데 못 받은 임금을 돌려받기까지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연장 수당을 못 받은 노동자가 통장 입출금 내역과 근로 시간 내역 등을 보며 체불액을 계산하고 있다.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근로감독관이 노동자와 사업주의 의견을 종합해 체불 임금을 확정 짓는 데까지만 최소 두세 달이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 못 받은 돈이 얼마인지, 일한 시간은 몇 시간인지 등을 입증하는 것은 모두 노동자의 몫입니다.

노동청 조사를 거쳐 임금 체불이 인정돼도 사업주가 돈을 안 주고 버티면 민사 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연장 수당과 퇴직금 등을 못 받은 웹디자이너 김 모 씨는 "임금 체불 때문에 진정을 넣고 해결이 안 돼서 고발까지 가게 되는 것 자체가 힘들죠."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5월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김 씨는 아직도 체불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노동청 조사에 불려 나가는 수고만 졌을 뿐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끌수록 노동자만 손해 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 "지연이자제·징벌적 손해배상 도입해야"

지연이자제는 사업주가 체불 임금을 신속하게 지급하도록 임금을 늦게 줄수록 연 20% 이자를 물리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지연이자를 안 줘도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 민사 소송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퇴직자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이종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임금 체불을 해도 사업주가 입는 손해나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임금 체불 사건이 줄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연이자 제도에 대해 처벌 조항을 두고 경제적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의적이고 상습적으로 체불한 사업주는 또 그런 일을 범할 가능성이 크고 최소 2~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미국에서 임금 체불은 임금 '절도'..징벌적 배상금·사업중단 명령 등 강력 제재


미국 뉴욕주는 지난 2011년 임금 체불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밝히며 '임금절도예방법'(Wage Theft Prevention Act)을 제정했습니다. 임금을 체불하면 같은 금액만큼을 배상하도록 정하고, 체불액 지급 명령을 90일 이상 이행하지 않으면 배상액이 더 늘어납니다.

또 사업주는 노동자를 채용하면 10일 이내에 '임금통지서'를 제공해야 합니다. 통지서에는 사용자 소재지 파악을 위한 공식·비공식 명칭과 주소, 전화번호를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사업주가 임금을 떼먹고 잠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주 노동부 근로기준집행국장은 임금 체불한 업체에 대해 사업 중단 명령을 내리는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임금을 체불한 뒤 위장 폐업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업을 승계한 사업주에게도 임금체불 사용자와 동일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KBS 사회부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 동안 임금 체불 문제를 연속 보도힌 바 있습니다 . 보도가 나간 뒤 월급을 못 받은 사실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의 추가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안도 내주셨습니다. 처벌을 강화하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배드파더스'처럼 체불 업주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의견 등입니다.

보도 이후 고용노동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상습 임금체불 업주에 대한 형량 강화, 징벌적 배상제 도입 추진 등 임금 체불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이 '임금 체불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이번에는 벗어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제도 개선 방향과 추진 상황도 끝까지 지켜보고 취재하겠습니다.

고아름 기자 (are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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