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손배 청구..수형자 소송의 역사는?
확진 재소자 국가 상대 소송 이어져
과거 과밀수용·편지밀봉 헌법소원도
미국선 더욱 다양한 이유로 소송
"포르노 비디오 반입 허용해달라"
"스파게티 괴물교 집회도 허하라"
지난달 6일 서울동부구치소 재소자 4명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모두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교정시설 안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소송을 낸 첫 사례다. 이들은 구치소의 마스크 지급, 확진자 격리 같은 감염병 대처가 미흡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주장했다. 첫 소송이 제기되자 비슷한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동부구치소 코로나19 확진 수형자 및 그 가족 33명을 대리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박진식 법무법인 비트윈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11월27일 동부구치소 첫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전수조사는 12월18일에야 이뤄졌다”며 소송을 내게 된 배경을 밝혔다.
교정시설 안 코로나19 집단감염을 계기로 재소자 소송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한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정부 및 교정시설을 상대로 한 수형자 소송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밀집수용은 재소자 기본권 침해” 판결 이어져
가장 흔하게 제기되는 소송 가운데 하나는 밀집수용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이다. 교정시설의 수용인원이 기준치를 초과한 탓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주장이다. 법무부의 2019년 발표 내용을 보면, 2011년부터 2019년(11월 기준)까지 재소자의 과밀수용과 관련한 소송은 61건에 이른다. 당시 법무부는 “31건이 취하 또는 기각 종결됐고 30건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과밀수용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밀집수용이 재소자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쪽이다. 헌재는 2016년 재판관 만장일치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과밀한 공간에서 이뤄진 수용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 헌법소원은 2012년 비정규직 규탄집회에 참여했다가 서울구치소 노역장에 수감된 강아무개씨가 제기했는데, 강씨가 머물렀던 방은 한명당 사용 가능 면적이 평균 1.3㎡(약 0.4평)로 평균 키를 가진 성인 남성들이 어떻게 눕더라도 발을 다 뻗지 못할 정도로 협소했다고 한다. 헌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확보되지 못한 이 사건 방실에서 신체·정신적 건강이 악화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교정시설 내에 수형자 1인당 적어도 2.58㎡ 이상의 수용면적을 상당한 기간(늦어도 5년 내지 7년) 이내에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일선 법원에서도 과밀수용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2017년 부산고법은 부산구치소에 수용된 ㄱ씨, ㄴ씨 등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교정시설이 좁은 공간에 과밀수용해 원고들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고 충분한 숙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며 ㄱ씨에게는 150만원, ㄴ씨에게는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던 ㄷ씨가 낸 소송에서 국가가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019년에도 같은 법원에서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던 ㄷ씨에게 국가가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는 등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치과 치료비 달라’, ‘방충망이 햇빛 차단한다’ 소송 이유는 다양
수형자가 옥중에서 쓴 편지를 보낼 때 밀봉할 수 있게 된 것도 마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신아무개씨가 헌법소원을 내 위헌 결정을 받은 뒤부터다. 신씨는 2009년 교도소가 허리디스크 치료를 거부하자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 편지를 보내려 했는데, 교도소 쪽이 밀봉된 편지를 보낼 수 없다고 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편지를 봉하지 못하도록 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 조항이 헌법상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2012년 2월 재판관 7명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봉함하지 않은 편지를 교정당국은 편리하게 보안검색할 수 있겠지만, 수용자는 자기 생각이나 의견 등을 서신으로 교환하는 것을 포기해 결국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엑스레이 검색기 등으로 의심이 가는 경우에만 편지를 개봉해 확인하는 등 덜 기본권 침해적인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수형자들이 내는 소송의 이유는 다양하다. 2007년 구치소 수감자 ㄱ씨는 일간지만 구독하도록 한 수용자 관련 지침이 위법하다며 구치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ㄱ씨는 <법률신문>을 구독하게 해달라고 신청했으나,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일간신문’만 구독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구독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은 “수용자가 신청한 신문이 교도소의 안전과 질서를 해한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교도소장은 이를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ㄴ씨는 2014년 교도소의 이발지시를 거부했다가 ‘징벌방’에 수용된 뒤 교도소장을 상대로 징벌 취소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은 “규정상 단정한 범위에서 머리를 기를 수도 있는 것”이라며 ㄴ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ㄷ씨는 밥에 든 돌을 씹는 바람에 어금니가 깨졌다며 국가가 치료비 등 8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ㄷ씨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가 고가의 비용이 소요되는 치료까지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는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인물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2010년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교도소의 자살방지 방충망이 햇빛을 차단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소송에 대해선 1심 재판부는 “재소자들의 지위가 약화된 것은 명백하지만 수용자의 자살을 방지하려는 국가의 노력을 무시할 수도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외국에선 재소자 소송 더 활발해
수형자들의 소송은 외국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소송의 왕국’ 미국에서는 교정시설에서 제공하는 음식 관련 소송이 이따금 제기된다. 2019년 1월 미국 오리건주의 교도소에 수감됐던 3명의 수감자는 교도소에서 불량식품을 제공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사람용’이 아닌 닭고기나 생선, 상한 우유 등을 교도소가 제공해 종종 식사 후 복통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만 심리를 맡은 지방법원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로 소송을 기각했다. 2013년 미시간주에서는 수감자들이 교도소를 상대로 할랄(이슬람교도 식품) 및 코셔(유대인 식품) 식단을 제공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2011년 플로리다주의 한 교도소에서는 수감 중이던 남성은 콩고기를 먹고 위 경련이 났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황당한 소송도 있다. 2011년 은행털이로 미시간주의 한 교도소에 수감된 남성은 “포르노 비디오, 게임 콘솔을 반입하게 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 남성은 ‘포르노 반입 금지는 또 다른 처벌’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지만, 소송비용 350달러를 내지 않는 바람에 기각됐다. 2016년에는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교’(FSM)란 종교를 믿는 수감자가 네브래스카 주 교도소를 상대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해 정서적 고통을 주었다’며 500만달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교는 2005년 한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만든 종교로, 기존 종교를 패러디해 스파게티 괴물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교리 등을 설파한다. 이 수감자는 교도관들이 종교 집회를 여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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