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최초 여성 지부장 김지나 "화물노동자 삶이 진짜 처절하니까요"
[경향신문]
김지나씨(44)는 만 스물에 이른 결혼을 했다. 아들 둘을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19년 만에 일자리를 찾아나선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조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하청업체들의 부도와 폐업이 이어졌다. 하청업체 용접공이던 남편도 임금을 못 받는 일이 벌어졌다. 경력이나 기술이 없는 여성들은 식당 등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의 시선은 다른 데 가 닿았다. 화물차 운전이다. 1종 보통 면허를 갖고 있던 김씨는 운전을 잘 했다. 평소 길에서 큰 화물차를 보면 몰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라고 특별히 못하겠나’ 싶어 학원에 등록했다. 1종 대형·특수면허를 땄고, 화물운송종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세 가지 모두 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6년 화물차 운전을 시작한 김씨는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9기 총선거에서 부산 서부지부장에 당선됐다. 남성이 절대다수인 화물연대 최초의 여성 지부장이다. 지난 8일 김지나 지부장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화물차 운행 형태는 장거리·중거리·단거리 식으로 다양한데요. 저는 부산 신항 근처에서 단거리를 자주 운행합니다. 주로 컨테이너를 운송하지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6~7시쯤 퇴근합니다.”
- 점심 시간이 따로 있나요.
“따로 없어요.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싸 갖고 다니며 요기만 합니다. 처음에는 밥을 싸서 갖고 왔는데, 소화가 안돼서요.”
김 지부장은 요즘 주 5일 일한다. 과거에는 화주나 운송사가 지시하면 평일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많았다. 요새는 코로나19 사태로 물동량이 줄어 자연스럽게 주 5일제가 됐다.
- 화물차 운전은 노동 강도가 높고,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 건 업무 외 노동이죠. 운전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공컨’(빈 컨테이너) 상태를 검사하느라 하루 종일 공컨을 열 몇 개씩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합니다. 컨테이너를 세척장까지 옮기고 세척 후 다시 갖다 놓고요.”
- 원칙적으로 누구의 업무인가요.
“선사가 해야 하는 일인데, 관행상 기사들이 하는 걸로 돼 있어요.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도저히 이해를 못했어요. 화물노동자는 운전이 업무인데 상하차 등 업무 외 노동을 하다보니 위험한 상황이 많습니다.”
지난해 11월 인천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화물차 운전기사 A씨는 당시 발전소에서 나온 석탄회(석탄재)를 화물차로 옮기는 상차 작업을 하다 차량 적재함으로부터 3.5m 아래 지상으로 떨어져 숨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화물차 기사 중 여성은 극히 드물다. 화물연대 조합원 2만1000여명 중 여성은 10여명에 불과하다. 김 지부장은 어떻게 적응했을까.
“화물운송 환경이 워낙 남성 위주여서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신기한 풍경을 구경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지나친 관심이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자격증을 따고도 일할 기회를 찾기는 어려웠다. 기사를 고용하는 화물차는 원거리 운행이 많고, 근거리 운행을 하더라도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집안 살림을 병행하려면 출퇴근 일자리가 필요했다. 몇 달을 기다렸다. 당시 컨테이너위수탁지부의 이승덕 지회장이 김씨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구해줬다. 면허만 땄지 운전은 안 해 본 상황이었는데, 양산 차고지에서 사흘 연습하고 일을 시작했다.
- 화물연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부산항이 세계적 규모의 물동량을 자랑하지만, 주변에 화물차 주차장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요. 주차할 곳을 찾다가 화물연대에서 관리하는 주차장을 쓰게 됐어요. 거기를 써야 한다는 ‘실용적 이유’로 가입한 셈이죠. 물론 이것만은 아닙니다. 운전을 하면서 불합리한 일을 많이 경험하게 됐어요. 항만터미널 직원들과도 자주 싸우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안 되겠다 싶어 가입하게 됐습니다.”
- 가입한 뒤에는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처음에는 살짝 기웃거리며 동태를 살피는 정도?(웃음). 그러다 화물차 영업용 번호판에 문제가 생겼어요. 번호판이 제 명의 아니고 운수회사 명의거든요. 이른바 지입제입니다. ‘넘버 값’을 2000만원 내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줄 이유가 없다고 불응했죠. 주변에서는 타협하라고 했지만, 저는 싸우는 쪽을 택했어요. 결국 번호판 내놓으라는 민사소송을 걸어오더군요. 1년 반 정도 소송을 진행했는데, 결국 패소했어요. 번호판을 빼앗기고 다시 다른 회사와 계약해야 했습니다.”
지입제(위·수탁제도)란 운송 사업권을 가진 운송사가 화물차를 소유한 차주와 계약을 맺고 물량을 차주에게 맡겨 처리하는 방식이다. 차량의 실소유주는 개인 차주이지만, 운송 사업자가 가진 번호판(운송 사업권)을 부여받아 화물 운송을 하게 된다. 운송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위·수탁 차주에게 보험 갱신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 소송을 겪은 후 화물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건가요.
“제 성정을 보고 분회장이 총무차장으로 추천했어요. 얼떨결에 간부가 된 거죠. 간부가 되고 나니 책임감이 커지고, 공부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 지부장 출마를 결심한 배경은요.
“본격적으로 노조 일을 하다보니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생겼어요. 화물노동자 삶이 진짜 처절하니까요. 화물노동자들의 삶을 바꾸는 데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 화물연대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편이 저보다 일곱 살 위입니다. 고지식한 사람이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쪽이었어요. 여성의 사회생활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노조활동은 더 맘에 안 들어했죠. 제가 계속 설득했어요. 이 직장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일도 내 일이라고요.”
- 지부장 출마에 대해선 뭐라고 하던가요.
“출마해야겠다고 하니까 ‘왜?’ 하고 물어요. 그래서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죠. ‘그래, 열심히 해봐’ 하더군요. 지금은 최고의 지지자입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고충이 적지 않았다. 단독출마였는데도 마지막까지 당선(과반수 득표)을 자신하지 못했다. 연령대가 높은 화물노동자들은 ‘여성 최초’란 점을 들어 자꾸 ‘박근혜’와 비교했다. ‘제발 좀 비교하지 말라. 저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찬성률 85%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부산 서부지부는 부산 지역 9개 지부 중 하나다. 조합원이 360명에 이른다.
-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최초 여성 지부장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화물차 주차장 문제 등 당면 과제도 해결해야 하고요. 조합원 피해 구제와 권익 향상 등 ‘노조를 노조답게’ 일궈 가겠습니다.”
- 화물노동자로서 정부에 바라는 게 있습니까.
“물류를 두고 ‘산업의 동맥’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물류를 움직이는 화물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개선해야 합니다. 내 차를 내 명의로 등록할 수 있는 ‘화물자동차 등록 실명제’가 시행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화주나 운송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화물차 기사는 회사와 고용근로계약을 하지 않고 도급·용역·위탁 등으로 계약해 일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 노동자)에 속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재해를 당해도 산재 신청이 까다롭고, 산재 인정을 받기도 쉽지 않다.
-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가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낮은 운임으로 과로·과적·과속 운행이 굳어져온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여건을 개선하고. 교통 안전도 확보하자는 취지인데요.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과 비슷한 형태의 화물운송 운임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에 대한 현실적 대가를 보장하지 않고 있어요. 물류산업 구조상 최상위에 위치한 화주가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면 되는데, 그들은 돈을 안 쓰려고 합니다. 결국 피라미드 맨 아래의 기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예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화물연대’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파업’이 뜬다. 강성 이미지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저도 화물연대 활동을 하기 전에는 보수적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 언론만 접했습니다. 노조가 나쁜 단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노조활동을 하며 배우게 됐어요.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노동자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보장받으려면 뭉쳐야 하고, 요구해야 하고, 때로는 파업도 할 수밖에 없다는 걸요. 헌법에서 노동 3권, 즉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함께 살기 위해 싸우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