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우상호의 승부수, 무리수로 남을까

강청완 기자 2021. 2. 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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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의원의 고 박원순 전 시장 유가족 위로글, 서울시장 위한 승부수?


"우상호 의원이 쓴 거 맞아?"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오전,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SNS에 글을 올리자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반응이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뻔히 논란이 예상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동지"였다며 추모하고 유가족에게도 위로를 전하는 취지의 글을 두고 누군가 우 의원을 사칭해 올린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돌았다.

계산된 메시지라는 걸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지 파일 형태의 글이 우 의원 본인의 SNS에 올라왔다. 불과 몇 시간 뒤에는 본인의 입으로 못을 박았다. 서울시장 경선 후보 선거운동차 재래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설 연휴를 앞두고 박 전 시장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메시지를 썼다"라고 말한 것이다.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원순 전 시장의 공을 충분히 기릴 수 있다.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박원순의 10년은 많은 것을 남겼다. 명절 연휴와 고인의 생일을 앞두고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순수하게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정치적 메시지였다. 시점과 채널은 물론이고 단어 하나하나 겨냥하는 바가 민망할 정도로 분명했다. 참모진의 실수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곧 설득력을 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상호였기 때문이다. 시인 출신에 대변인만 8차례를 지낸 우 의원이다. 말과 글이 갖는 힘과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정치적 의도가 빽빽이 들어찬 10여 줄 남짓의 메시지 속에, 피해자에 대한 배려나 성찰은 온데간데없었다.


● "박원순은 롤모델"…박영선 잡기 위한 승부수?

당장 서울시장 당내 경선을 의식한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음에도 경쟁자인 박영선 전 장관과 적게는 더블스코어, 많게는 3~4배 이상 지지율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논란을 감수하고 '선명성 강화'라는 회심의 카드를 던졌다는 시각이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권리당원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선출한다. 인지도에서 절대적으로 앞서는 박 전 장관에 여론조사는 내주더라도 권리당원 선거에서 앞서면 승산이 있다는 게 우상호 캠프의 전략이란 얘기다.

실제 우 의원은 최근 박 전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깜빡이를 켰던 게 '금태섭' 이슈였다. 이달 초 박 전 장관이 "보듬고 가는 품이 넓은 민주당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금태섭 전 의원과도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우 의원은 "동의할 수 없다"라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누나, 동생 하는 사이"라며 충돌을 자제해왔던 박 전 장관을 겨냥해 "'반(反) 문재인 연대'에 참여해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겠다는 것"이라고까지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서는 그 계기를 최종 경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연이어 발표된 여론조사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절대 열세'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에 캠프 내부에서조차 회의론이 짙어지자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실제 민주당에선 지난해 총선부터 전당대회까지, 확장성보다 선명성을 선택한 이들이 마치 유행처럼 축배를 들었다. 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노려볼 만한 선택지라는 게 당 안팎의 논리다. 적어도 정치적 유불리의 차원에선 말이다.

● 당 대표 사과에 본인도 동의했는데…자충수였나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정하고 당 대표까지 사과한 사안이었다. 인권위가 "박원순 전 시장의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라고 발표하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피해자와 가족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인 게 불과 2주 전이다. 심지어 우 의원 본인도 "국가의 공공기관이 전문가들과 함께 상의해서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당의 입장에 동의한다(2021.1.28.)"고 수용한 사안이다. 본인의 발언을 불과 보름 만에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 우상호 "박원순은 내 동지"…2차 가해 거센 비판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205177 ]

백 번 양보해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감수하겠다는 후보의 정치적 발언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쟁자인 박 전 장관은 우 후보의 메시지에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어후박'(어차피 후보는 박영선)을 내세우며 본선 행보에 여념이 없다. 성 비위 프레임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를 써온 민주당에도 부담을 준 건 물론이다. 야당에선 "왜 서울시장 재보선이 열리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나경원), "아무리 당내 경선이 급해도 최소한의 분별력은 잃지 말라"(오신환)는 비판이 쏟아졌다.

쐐기를 박은 건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가 쓴 글이었다. 굳이 해석을 달기보다 원문을 첨부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가 보기에는,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적 승부수'가 또 다른 가해와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처럼 비쳤다.

● 승부수로 먹힐까, 무리수로 남을까

우상호 의원은 오랫동안 이른바 '586' 정치인의 대표 주자로 꼽혀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고(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은 그의 '인생 사진'으로 꼽힌다. 스스로 밝혔듯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기성 정치에 입문한 그는 성공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거론할 때 늘 첫 줄에 자리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합리적 중도의 길을 걸어온 게 그의 강점이었다. 한편에선 계파정치 혁신을 외쳤던 우 의원의 '합리성'이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말도 나왔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애매함이 선명함을 요구하는 요즘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 의원의 '승부수'는 그러한 고민과 정치적 위기감의 발로일 수 있다. 출마 선언에서 "서울시장이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라고 밝혔던 우상호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고민과는 별개로 우 의원의 메시지가 그가 추구해온 원칙과 명분에 부합한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정치공학을 우선하는 논리는 그가 수십 년 전 혁신을 외치던 구태정치의 모습이기도 했다.

개인적 인연을 들먹이는 건 사족 같은 일이지만, 기자는 지난 2016년 우상호 의원을 처음 만났다. 야당 원내대표로서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의 원내대표 취임 일성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 주는 보호자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정치인 우상호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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