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이냐, '모'냐..그것이 과학이다

박경호 2021. 2. 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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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잘 쇠고 계신가요. 코로나19로 지치고 방역지침에 위축됐어도 명절은 반갑습니다. 예로부터 설에는 삼삼오오 소박하게 모여 윷놀이를 하던 풍습이 있는데요.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일제 중추원이 조사한 ‘조선풍속집’이라는 자료를 보면, 윷놀이 중 ‘말윷’(馬田)을 예로, 백제 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잡기며 돈을 거는 것 외에도 섣달그믐과 정월에 놀이로 행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봉유설’을 근거로 역신을 쫓는 놀이로 풀이했습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사희(柶戲)라해서 관리들이 즐긴 사례가 나옵니다. 특히 태종실록 34권에는 “유복중의 아내와 함께 윷놀이했다”며 남녀가 함께한 기록도 있습니다. 역사가 신채호는 윷놀이의 기원을 단군왕검시대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중국과 인도의 고대 놀이가 전파된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은 뒤로하고서 윷놀이는 분명 오랫동안 이어진 대표적 민속놀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윷의 묘미는 아무래도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자신의 말을 배치하고 상대를 따라잡는 것일 텐데요. 특히 ‘윷’이나 ‘모’와 같이 ‘대박’이 나오면 그 감흥이 치솟습니다.

■업고 ‘더블’로 갈 것인가…윷가락의 확률

즐거운 윷놀이. 쫓고 쫓기다 마지막 말을 상대방 차례에 앞서 윷판에 놓아야 합니다. 이미 판에 놓인 말에 업힐까요? 아니면 따로 놓을까요. 자칫하면 상대방에게 우리 말이 먹히고 패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과연 다음 판에서 윷패는 무엇이 나올까요?

단순하게 4개의 윷가락을 한꺼번에 던졌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6가지입니다. 윷가락 한 개를 던지는 것이 앞뒷면이 동일한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가정한 겁니다. 이때 윷가락 한 개가 뒤집히고 나머지 3개가 엎어지는 ‘도’가 나올 확률은 4/16가 됩니다.


3개가 뒤집혀야 하는 ‘걸’이 나올 확률도 도가 나올 확률과 같이 4/16입니다. 4개 모두 뒤집히거나, 엎어져야 하는 ‘윷’이나 ‘모’의 확률은 각각 1/16로 같습니다. 경우의 수로만 생각하면 2개가 뒤집히는 ‘개’가 나올 확률이 6/16으로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통계로 살펴보니 결과가 달랐습니다. 윷가락의 모양 때문입니다. 주사위처럼 모든 면이 동일하지도 않고 전국적으로 통하는 윷가락 규격이나 기준이 없습니다. 그저 4개의 윷가락이 한 손에 쥐기 편한 크기인데요. 개개의 모양도 완전한 반원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둥글다만 모양입니다. 여기에 윷놀이의 묘미가 숨겨 있습니다.

■어중간하게 둥근 윷의 묘미

윷의 확률에 대한 ‘논리적 연구’의 시작으로 꼽히는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허명회 교수의 논문(1995)에서는 이런 윷가락의 모양을 고려해 ‘평면이 출현할 확률’을 통계학적으로 추정했습니다. 윷이 그림과 같은 모양이라고 가정하면, ‘각도’가 커질수록, 원주부분에 해당하는 빨간색의 길이는 길어집니다. 반면 노란색은 좁아지죠. 윷을 던지면 바닥에 닿는 부분입니다. 이 두 부분의 길이를 바탕으로 어떤 면이 더 자주 나올 지 확률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각도가 17도 정도 기울어진 개별적인 윷가락에 대한 역학 계산과 1,000차례 던져본 실측치와 비교해 계산한 결과 평면이 출현할 확률은 0.6정도로 추정됐습니다. 그래서 반원통 윷의 경우, 던지기보다 굴리는 것이 ‘모’가 나올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박진경 등의 논문에서는 실제 윷을 던져 발생하는 상황에 집중했는데요. 무게와 길이, 나무나 플라스틱 등 재질이 서로 다른 4종류의 윷을 두께가 0.6~2.4㎝까지 서로 다른 3개의 바닥에 던지는 실험을 통해 바닥보다는 ‘윷의 종류’가 확률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시중에서 사들일 수 있는 12개의 서로 다른 윷을 던져 ‘평면이 나올 확률’을 구한 결과, 대부분 윷에서 ‘평면이 나올 확률’이 0.5~0.6정도로 추정됐습니다. 이 경우 윷패는 ‘개>걸>도>윷 >모’ 순으로 출현확률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윷은 우연성이 신명과 교감을 불러오는 ‘민중의 놀이’

일반적으로 대가와 확률은 반비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로또 1등이 ‘꽝’보다 확률이 희박한 것처럼요. 그런데 윷놀이는 1칸밖에 가지 못하는 ‘도’의 확률이 ‘걸’이나 ‘개’보다 낮습니다. 오창혁(2010)은 앞선 연구들을 점검하며 “사위의 우연성이 윷놀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더 큰 요인”이며 “윷놀이의 특징은 도,개,걸,윷,모에 따라 말이 말판에서 갈 수 있는 거리가 배의 개수인 1,2,3,4,0이 아니라 1,2,3,4,5라는 데서 그 묘미가 생겨난다”고 평가했습니다.

민속학자 임재해는 윷놀이에 대해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정서적 교감과 집단적 신명에 뿌리내리고 있는 민중 놀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수학적 원리에 따라 일정한 윷패의 확률을 가늠할 수 있긴 하지만, 실제로 어떤 패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이런 ‘우연성’이 윷놀이가 가지는 승부의 재미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놀이에도 오묘한 이치가 숨겨있는 셈입니다.

자, 이제 윷판에 선 당신. 손에는 가득한 윷가락의 무게를 느낍니다. 윷을 쥔 손에 상대방의 시선이 날아와 꽂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 앞에서 통계나 확률은 어디까지나 숫자에 불과합니다. 회심의 윷가락을 던져 코로나19로 지쳐있던 심신을 달래고, 액운도 쫓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박진경·박흥선, 윷의 확률 추정에 대하여, 응용통계연구. 1996년 9월
오창혁, 윷놀이와 확률, 한국데이터정보과학회지, 2010
김만태, 윷놀이에 관한 쟁점 고찰 -<사희경(柶戱經)>의 존재 여부와 윷놀이의 유래를 중심으로-, 민속학연구 2009, vol., no.24

박경호 기자 (4righ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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