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좌우 갈등 최전선 된 '보훈'..국민 신뢰 잃을라
호국단체 vs 독립단체, 사사건건 공개 충돌
친일·친북 한계 있는 보훈단체 상호 공격 몰두
보훈단체 국고지원금 560억 규모, 수익사업도
김주환 "보훈이념 특정 가치 경도되면 안 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보훈(報勳)이란 국가를 위한 희생에 보답하고 공로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 보훈은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1990년대 말까지 보훈 정책은 사회 갈등 요인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과거사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사람들의 적격성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이 국민 통합이 아닌 분열의 원인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우리나라 보훈에 내재된 3개 기본가치인 민족독립, 국가수호, 민주발전 간 충돌이다. 보훈처에 등록된 보훈단체, 즉 공법단체들이 이 충돌의 최전선에 있다.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박삼득 전 국가보훈처장에게 "보훈이 호국·독립·민주 세 분야로 돼있는데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성격이 다를 수 있다"며 "보훈처가 성격이 다른 것을 포용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공정하게 소통하면서 잘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취임한 황기철 신임 보훈처장의 취임사 내용이 이를 보여준다. 황 처장은 "독립·호국·민주의 각 분야별 정책수립과 시행에 있어 만전을 기하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항상 신중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며 "정쟁의 대상이 아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과 미래 번영을 위한 국민통합 시대의 토대를 닦는 보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호가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민족독립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단체, 국가수호를 대표하는 군인·안보단체, 민주발전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단체 등이 사사건건 첨예하게 맞서면서 충돌이 거듭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보훈단체 간 갈등이 본격화 된 것은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부터였다. 문 대통령이 2019년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발언한 뒤 논란이 촉발됐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하고 광복군 부사령관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1948년 월북해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을 받고 북한의 노동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문 대통령 발언으로 김원봉에게 훈장이 주어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재향군인회 등 호국 보훈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반대로 독립 보훈단체들은 서훈에 찬성했다. 결국 청와대는 김원봉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또는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서훈 불가를 선언했다.
이후에도 호국 보훈단체들은 보수 야당과 보조를 맞췄다. 이들 단체는 현충일 추념식 등 행사에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유족들이 초청 명단에 포함됐는지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정부 비판에 앞장섰다. 이 단체들은 색깔론을 바탕으로 여러 계기마다 현 정부의 각종 보훈 정책에 불만을 표출했다.
김원봉 논란 동안 수세에 몰렸던 독립 분야 공법단체들은 지난해 반격을 가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호국 보훈단체의 상징적 인물인 백선엽 장군 등 고위 군인들의 친일 행적을 공개 비판한 뒤 일제히 공세를 폈다.
이후 백선엽 장군이 별세하자 독립 보훈단체들은 백 장군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서는 안 된다며 간도특설대 복무 등 친일 행적을 부각시켰다. 호국 보훈단체들은 조국 수호의 영웅을 매도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백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독립 보훈단체들은 현 보수진영과 일부 호국 보훈단체들이 친일세력과 군부독재세력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독립 단체들은 앞으로도 친일 청산을 완수하겠다는 취지 아래 보수진영과 군인단체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처럼 첨예한 갈등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를 거치며 공로자와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들 유공자 사이에 대결과 반목이 발생해왔다. 어찌 보면 오늘날 보훈단체 간 충돌은 예견돼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독립 보훈단체와 호국 보훈단체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각각 친일과 친북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양 단체는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호국 보훈단체의 약점은 백선엽 같은 친일 인사들의 존재다. 이들은 일제하에서 일본 육사나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부로 일본군에 합류해 친일행위를 하다가 해방 후 군에 투신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이후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함으로써 공헌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해방 후 군 건설 과정에서 중용됐고 군인이라는 특수신분임을 이유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한 처벌을 피했다.
해방 후 친일 대 반일 대립구도가 냉전과 분단으로 반공 대 친공 구도로 바뀌면서 이들을 위한 공간이 확보됐다. 이들은 냉전이 계속되는 동안 반공이 국시인 한국에서 사회적 지위를 높여 갔고 사회적 비판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에 이들도 나름의 항변을 해왔다.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면서 결과적으로 친일세력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은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려던 한 사람의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독립 보훈단체의 약점은 김원봉 같은 일부 친북 인사들이다.
박헌영의 처 주세죽, 김산(장지락), 김철수 등 공산주의에 관련됐던 독립 운동가들을 비롯해 해방 후 중도 좌파의 사회주의국가건설과 좌우합작을 위해 활동하다 암살당한 여운형 등이 보수 진영의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진영을 비롯한 각계각층 간 인적 교류가 잦았고 이 같은 행적이 결과적으로 친북세력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이 같은 측면을 반영해 보훈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1월 서훈심사 기준 중 '공산주의자' 항목을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주력했거나 적극 동조한 자'로 바꿨다. 이에 따라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한 공산주의자나 일제하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잠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중단한 자, 그리고 해방 후 사회주의국가건설에 주력하거나 적극 동조하지 않은 자는 유공자로 서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노무현 정부와 맥을 같이 하는 문재인 정부 역시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했더라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거나 적극 동조한 것이 아니면 사안별로 판단해 독립유공자로 포상해왔다.
그러자 보수진영은 손혜전 전 국회의원 부친 손용우씨처럼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남로당) 활동 이력을 갖고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사례를 문제 삼으며 현 정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 보훈단체 역시 친북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반국가행위 전력자들이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유공자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됐다.
국무총리 직속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2006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관련자들에 대해, 2008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자들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하고 금전적 보상을 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 구국학생연맹의 핵심이자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원래 명칭 민족해방애국전선) 총책으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황인욱이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됐다. 왕재산 간첩단 총책으로 활동하던 김덕용은 1984년 11월 민정당사 점거 사건 참여에 대해 민주화유공자 신청을 하고 보상금을 받았다. 이에 따라 반국가행위자들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함으로써 국가가 종북행위자들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저마다 약점을 가진 각 보훈단체는 서로를 헐뜯으면서 공존을 거부하고 있다. 이따금 불거지는 보훈 관련 논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전선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갈등이 거듭되자 급기야 일부 보훈단체들은 공존 불가를 선언하며 아예 보훈처 산하 공법단체에서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 호국 보훈단체 관계자는 "그 사람들(독립 보훈단체)이 너무 정치성향을 띠고 나온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순수하게 독립유공자 당사자 내지 후손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국가에 봉사했는데 김원웅이 들어가면서 정치 색깔이 입혀졌다"고 비판했다.
한 독립 보훈단체 관계자는 "서로를 적으로 아는데 같은 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독립 단체들이 행정안전부나 국무총리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보훈처와의 결별을 통한 갈등 해소는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단체들로서는 보훈단체 등록 취소를 결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국고지원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훈처가 각 단체에 지급한 국비 지원 규모는 재향군인회 83억원, 무공수훈자회 80억원, 상이군경회 77억원, 6·25참전유공자회 72억원, 월남전참전자회 72억원, 특수임무유공자회 66억원, 고엽제전우회 27억원, 전몰군경유족회 25억원, 광복회 23억원, 전몰군경미망인회 21억원 등 순으로 모두 566억원이다. 566억원 중 단체 운영비가 459억원, 사업비가 107억원이다.
보훈 관련 수익사업도 포기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보훈단체는 사업 범위 안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 보훈처로부터 회계 감사를 받긴 하지만, 선대와 전 정부로부터 불하받다시피 한 각종 자본과 시설을 바탕으로 수익을 얻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이처럼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는 보훈단체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국민 통합이 아닌 국론 분열을 야기할 경우 이들 보훈단체의 존립 근거 자체가 약화할 수 있다. 보훈처는 국민 신뢰를 잃은 단체들의 등록 취소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행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은 보훈단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률 14조에 따르면 각 단체는 특정 정당의 정강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공직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등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보훈단체가 법률을 위반하거나 설립 목적에 맞지 않게 수익사업을 운영하면 국가보훈처장은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 시정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보훈처장은 해당 단체의 수익사업을 불허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훈단체 간 갈등을 부추기는 일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주환 경기대 국제산업정보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보훈정책: 보훈이념의 가치와 국가정체성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과거 정부에서 나타난 국가수호 가치 중심의 보훈정책을 비판하고 보훈이념의 3가지 가치를 균형적이고 조화롭게 예우하고 선양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는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민족독립이나 민주발전의 가치에 경도됐고 대북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국가수호 가치를 경시하는 역편향을 드러낸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할 보훈정책이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보훈정책을 중간평가 해야 할 시점"이라며 "향후 남은 임기 동안에는 지금까지의 민족독립과 민주발전의 가치 확립에서의 성과, 그리고 국민과 함께 하는 보훈을 더욱 공고히 하되 국가수호의 가치를 소홀히 한다거나 대북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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