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학폭'에 흔들리는 프로배구, 아프게 짜내고 가야한다

이재상 기자 2021. 2. 14. 0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영, 이다영 이어 남자부 송명근, 심경섭 등
흥국생명 이다영(왼쪽)과 이재영. 2020.9.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인기 겨울 스포츠로 순항하던 프로배구 V리그가 '학교 폭력'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여자배구 최고 인기스타인 이재영, 이다영(흥국생명) 쌍둥이 자매를 시작으로 OK금융그룹의 남자부 2연패를 견인했던 송명근, 심경섭의 충격적 과거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팬들의 큰 사랑 속 호시절을 보내던 프로배구계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물론 팬들의 실망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V리그를 대표하는 간판선수라는 수식도 아깝지 않던 이재영, 이다영의 학창 시절 일탈 행동이 드러나자 이들의 영구제명까지 바란다는 국민청원도 나왔고, 둘이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도 다시보기를 삭제하는 등 사태가 커졌다.

구단은 사과했고, 가해자로 지목된 둘도 각자의 SNS를 통해 "좀 더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한다"며 "앞으로 잘못된 행동과 말들을 절대 잊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겠다. 자숙하고 평생 반성하며 살아 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까지 시간이 길지는 않았으나 'SNS를 통한 사과문'이라는 형식이 다시 도마에 오르는 등 계속 석연치 않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자부 OK금융그룹의 송명근과 심경섭도 중·고교 시절 학교 폭력을 저질렀던 게 확인됐다. 심경섭과 송명근 역시 구단을 통해 해당 사실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였다. 두 선수 사과의 형태는 '보도자료'였다. 일단 '방식'은 차치한다.

파장이 큰 사태가 발생했다. 공개된 4명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시선이 많다. 예전 '미투'처럼 '학폭'에 대한 추가 폭로가 이어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배구연맹(KOVO)을 비롯한 배구계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품위 손상' 등으로 징계를 줄 수 있으나 드래프트 전에 학교생활 시 벌어졌던 일을 프로 주관 단체인 KOVO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도 나온다.

연맹 관계자는 "학폭은 명백한 잘못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파악해서 규명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전례 없는 첫 사례다 보니 쉽게 징계 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여론의 무서운 회초리를 자신들이 감당해야할지 모른다.

남녀부 13개 구단 모두 이번 사태를 보며 긴장하고 있다. 혹시 해당 '구단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남자 배구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OK금융그룹의 심경섭(왼쪽)과 송명근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

현 시점에서 우승 후보로 분류되는 팀의 주축 선수,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스타들이 '학폭'에 연루된 것은 배구계의 큰 악재인 것이 분명하다.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뿌리까지 뽑기 위해 고름을 아프게 짜내고 가야한다. 선수 개개인의 성찰을 넘어 배구계 전체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10여 년 전 충격적인 '승부조작'으로 존폐 위기까지 몰렸던 프로배구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재도약 할 수 있었다. 과오를 인정하고, 영구제명 등 발 빠른 대처를 통해 V리그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내부의 노력 덕분에 배구는 '인기스포츠'라는 훈풍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괴로운 과정이었으나 그 지점부터 다시 짚어야한다.

들켜서 '문장'으로 사과하는 것보다 먼저 뉘우치려는 진심이 필요한 때다. 구단과 선수들이 일부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며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낼 것이 아니라, 아예 '학폭' 관련 전수조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승부조작 사건 때처럼 일정시간 자진신고 기간을 갖고, 연맹의 단일화된 창구를 통해 '학교 폭력' 관련 이슈에 단호하게 대처해야한다. 보기 흉하다고 상처 덮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결코 일부 구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름을 짜내서 다 털고 가야한다. '우리 팀 선수는 아닐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기 보다는 아프더라도 반드시 '학폭'이라는 악습을 뿌리 뽑는 것이 중요하다.

alexe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