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수리도 안했는데 합의금 수백만 원..'무사고'여도 보험료 오를수 있다?
지난해 6월 어느 밤 11시 30분, 대리운전 기사 윤종걸 씨는 철길 건널목에 섰습니다.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1m 후진한 순간, 뒤에 서 있던 1톤 트럭에 닿았습니다. 트럭 운전자 역시 대리운전 기사였습니다.
양쪽 차 주인 모두 차 수리도, 병원 진료도 원하지 않았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피해 차량의 대리 기사가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사람은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550만 원가량을 받아갔습니다. 그가 보험금을 타가자 윤 씨는 대리운전 보험갱신을 거절당했고 결국 일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과다 진료 의심 사례들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속 2km로 후진하던 차가 뒷차 앞 범퍼에 부딪혔는데 치료비 160만 원과 합의금 200만 원을 받아간 사람도 있고, 사이드미러가 긁혔는데 치료비 240만 원과 합의금 460만 원, 모두 700만 원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교적 가벼운 사고로 과한 진료를 받았다는 게 보험사의 얘기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교통사고로 다치면 진단서 없이도 기간 제한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현재 시스템 때문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보험사 사고조사원
"단순히 그냥 2, 3주 정도가 아닌 이걸로 보통 이런 케이스로 4개월, 5개월, 6개월, 길게는 3년까지 치료를 받는 분도 계십니다...실제로 내가 한의원 한 번 갈 때마다 9만 원, 10만 원 정도 비용이 나오는데 그 비용을 내가 앞으로 20번 갈지 30번 갈지 어떻게 아냐. 그 비용을 나한테 합의금을 지급해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늘어나고 있고요. "
과잉 진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교통사고 환자의 부상 정도는 다소 약해졌습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사망·중상자 비율은 13%에서 5%로 줄어든 반면 진단 5일 미만인 '부상신고자' 비율은 19%에서 62%로 급증했습니다. 진단 3주 미만인 경상자와 부상신고자를 합치면 전체 교통사고 환자의 95%를 차지합니다.
교통사고로 다치면 5일 미만 치료를 요할 경우 '부상신고', 5일에서 3주까지는 '경상자',3주 이상은 '중상자'로 분류됩니다.
과잉 진료를 받는 교통사고 피해자가 늘어나면 지급되는 보험금도 늘어납니다. 대인 보험금은 2015년 3조 6백억 원 수준에서 2019년 4조1,800억 원대로 36% 정도 늘었습니다.
다친 정도로 보험금 지급을 구분해봤습니다. 1~11등급의 중상해 지급 보험금이 6% 늘어난 데 반해 12~14등급의 경상해 보험금은 59%나 증가했습니다. 결국, 늘어난 보험금 대부분이 경상 환자에게 지급됐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지는 않는 돈이라 실감이 나진 않습니다. 보험료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가해자의 보험료를 계산해봤습니다.
차 사고가 나면 다음번 자동차 보험료에 대개 20% 내외로 할증이 붙습니다. 100만 원짜리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서 가벼운 사고가 한 건 났습니다. 보험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5대 보험사의 평균을 내보니 최고 27만 원까지 보험료가 올랐습니다. 다음 해엔 127만 원을 내야 하는 겁니다. 사고 할증은 3년까지 유지됩니다.
이후 무사고를 유지한다면 2년째 114만 원, 3년째 114만 원을 내야 4년째 다시 100만 원으로 돌아옵니다.
난 사고를 내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 보험료에 영향을 줄까요? 네, 과잉 진료가 늘어나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이 많아지면 '무사고'인 내 보험료도 오를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받아간 만큼 전체 보험가입자들이 나눠서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정태윤(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팀장)
"자동차 보험료는 전체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을 전체 가입자가 나누어내는 것인데요. 지금 경상 환자에 대한 과잉 진료가 있게 되면 과도한 보험금 지급이 있게 되고 ,과도한 보험금 지급은 전체적인 자동차 보험금의 인상을 초래하게 되고 그 결과 전체 자동차 보험도 인상되게 되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과잉진료로 새나간 보험금이 약 5천4백억 원입니다. 가입자 한 사람당 2만3천 원 정도의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렇게 '무제한급'의 피해보상이 가능한 건 우리나라 자동차보험 보상제도가 40년 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수가 늘고 도로 환경이나 사고 형태, 의료 환경이 변했지만,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태윤(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팀장)
"자동차 보험 제도가 과거에 처음 만들어질 때 그때는 차 대수가 얼마 안 됐고 일반 국민이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동차 가진 사람들이 갑이랄까...그러다 보니까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좀 과하게 하기 위해서 자동차 피해자에 대해서는 과실이 있더라도 100% 전부 다 물어주는 그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한 40년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에서도 과잉 진료로 인한 보험금 누수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사례로 제시한 영국의 경우 목이나 등, 어깨 부상 등에는 의료기관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치료 기간을 한정합니다. 또 치료 기간별로 보상금 한도도 설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위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상반기 안에 과잉진료로 인한 보험료 인상 문제 해결을 위해 치료와 보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기준이 바뀌는 만큼 현실을 반영한 기준, 과잉진료를 줄일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해 봅니다.
김도영 기자 (peace100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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