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채팅서 위로받는 아이들..'집'이 정답 아니었다 [스위트홈은 없다]
[06년생 오픈채팅방]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김연진(가명)이의 카카오톡 대화방 리스트에는 오픈채팅방 3개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직접 만들어 운영한다. ‘#06년만’, ‘#수다방’, ‘#중딩’ 같은 태그를 걸었고, 또래들이 찾아 들어온다. 연진이는 여기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온라인 수업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배달시켜 먹은 치킨나 족발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따위다.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는 모르는 딸의 이야기가 오픈채팅방에 가득하다.
물리적 방역을 위해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가정이 정서적 방역까진 지켜주지 못했다. 청소년들은 사소한 이야기부터, 묵혀둔 고민까지 믿고 털어놓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친구, 선생님과 단절됐다. 이런 ‘집콕’ 상황에서 기댈 곳은 가족들 뿐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도 꺼내지 못할 상황이라면 중학생 연진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대화 통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일부 가정에선 가족끼리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엄마, 아빠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도 옮아간다. 언어·신체적 폭력 등 위기상황이 심각해지는 사례도 있다. 이 경우라면 청소년들은 집 안팎 그 어디서도 하소연할 공간이 없다. 지난해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의 상담 사례가 크게 불어난 배경이다.
센터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우울감, 불안감을 즉각적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청소년의 심리적 상황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오프라인에서 상담사와 학생이 얼굴을 마주한 대면상담은 줄었다. 대표적인 게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동반자 사업이다. 각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청소년상담사들이 3만6974명의 청소년과 상담했다. 전년보다 14.5% 줄어들었다. 지난해 코로나 확산을 막고자 지역별 상담센터가 일시 폐쇄되고 가정방문도 어려워지자 대면 상담이 크게 위축됐다.
[비대면 상담이면 끝?]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올해 학생들을 위한 비대면 상담 프로그램을 강화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학교에 설치된 위(wee)클래스의 전문상담교사가 화상으로 학생과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더불어 지난 2018년 시작한 ‘모바일 학생위기문자상담시스템’을 보강해 채팅 방식의 상담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뭔가 털어놓고 싶은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비대면 공간’을 늘리려는 취지다. 이 밖에도 지자체나 기관 등이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SNS 상담을 벌였는데, 올해는 카카오톡, 블로그까지 상담 영역을 확대한다.
청소년의 정서상담 접근성이 개선되는 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에게 ‘집 밖’의 물리적 공간도 허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평범했던 가족도 없던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또래 청소년이나 어른과의 ‘건강한 만남’의 기회가 필요하다.
김종수 노원교육복지센터장은 “초등학생은 학교엘 가지 않더라도 긴급돌봄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만 (중학생 이상) 청소년에겐 공간이 없다”며 “코로나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운영되며 청소년들이 쉬고 소통할 수 있는 ‘청소년긴급돌봄공간’을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처방’도 절실하다. 상담을 요청하는 청소년들의 배경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잘 들어주고 격려하는 수준으로 위로가 된다. 하지만 가정 내 갈등이 위기상황(신체·언어폭력, 방임 등)에 다다른 경우라면 제 3자의 긴급한 개입이 필요하다.
백윤영 청소년상담사는 “보호자는 울타리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알콜중독이나 방임 등을 저지르는 부모라면 아이의 정서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 경우엔 가족들에 대한 약물치료 등 병리적 개입도 요구된다.
신의진 연세대 교수(소아정신과)는 “원래 잠재적 문제가 있던 가정은 코로나19 시기에 폭발하거나 폭발직전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학생이) 죽음을 생각하는 수준도 있을 것”이라며 “이렇다면 상담 모델만으론 한계가 있다. 초기부터 정신건강 전문가가 상담전문가와 통합 개입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규·박로명 기자/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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