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컷] 펑수가 준 교훈 벌써 잊었나..나랏일인데 아슬아슬 줄타기

이은정 2021. 2.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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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 1일 경기도 공식 SNS에 올라온 한 게시물.

재난기본소득 신청 방법을 안내하는 홍보물입니다.

홍보물 속 캐릭터들은 각자 손에 카드를 쥐고 "난 신용카드", "난 경기지역화폐카드" 등을 외치는데요.

일본 애니메이션 '디지몬 테이머즈'의 장면을 패러디했습니다.

그러자 이 홍보물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무단 도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표절 논란에 경기도는 지난 7일 해당 게시물을 지우고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재치 있는 홍보물을 만들고자 기존 콘텐츠를 패러디했다가 되레 역풍을 맞은 겁니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일본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과 유사한 캐릭터 '식약애몽'이 그려진 카드 뉴스를 올려 질타를 받았습니다.

정부 부처가 일본 캐릭터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했단 논란이 일면서 해당 캐릭터는 일본의 한 방송에도 소개됐죠.

2019년엔 인사혁신처가 EBS 간판 캐릭터 펭수를 패러디한 '펑수'를 공식 유튜브 채널에 등장시켰는데요.

펑수가 공직 박람회를 홍보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상은 누리꾼들로부터 '불법복제'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는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가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원본' 인기에 편승하고자 패러디물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봤는데요.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작) 팬 입장에선 무임 승차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요구하거나 합의된 사안도 아니고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패러디로 만들었을 때 비판적인 시선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은 "단순한 패러디로 보인다",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어와 행동 등을 모방해 만든 사진이나 영상)으로 많이 패러디되는 데 이게 논란거리인가" 등 표절 의혹 제기가 과하단 반응을 보였는데요.

어디까지가 패러디이고, 어디부터 저작권 침해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변형하기 위해선 저작권자 허락이 필요하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개별 저작물을 사안별로 검토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 법에선 저작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공표된 저작물을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 합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저작권법 제28조)하거나 원저작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공정이용'에 해당될 때(제35조의5) 저작권자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패러디 역시 이러한 제한 규정 범위 내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데요.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1인 미디어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 안내서'는 패러디물이 공정이용 요건을 충족하면 저작물의 자유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공정이용 요건은 먼저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와 용도가 중요한데요.

일례로 패러디물이 원저작물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면 원저작자에게 침해를 줄 수 있어 공정이용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만화 캐릭터의 경우 상품 디자인이나 삽화로도 사용돼 그 용도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공정이용으로 인정받기 더욱 까다롭죠.

또한 저작물 이용이 원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도 고려 사항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저작권법상 패러디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해 공정이용으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 판례에 따르면 패러디로 보호되는 것은 원저작물에 대한 비평과 풍자인 경우입니다.

2016년에도 패러디가 성립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원저작물과 독립된 창작성이 있어야 하고, 누가 보더라도 기존의 원작품을 과장해 흉내 낸 것으로 풍자하거나 희화화한 것이 명백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전세준 법무법인 제하 대표변호사는 "(원본을) 희화화하거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곁들어져 있어 (원본이) 뭔지는 알겠지만 새롭게 표현된 것들을 풍자나 패러디 영역으로 본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로 인해 '패러디니까 문제없다'란 안일한 생각에 자칫 법을 어기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정부 기관 등은 한층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설령 기관이 공공의 목적으로 패러디물을 만들었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전세준 변호사는 "공공성이 있다고 영리 목적이 없다고 볼 순 없다"라며 "기관에서 홍보용 등을 이유로 (저작권 침해가) 무조건 면책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밈이 놀이처럼 유행하며 패러디물이 넘치는 시대. 전문가는 이런 문화에서도 기본적인 저작권 에티켓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덕현 평론가는 "패러디를 하는 문화 안에선 사전동의를 잘 안 받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크다"며 "원본 캐릭터를 활용할 때 캐릭터의 사전 동의, 허가를 받아서 패러디를 만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은정 기자 성윤지 인턴기자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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