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빠, 왜 배구 안 해?".. 문성민을 일으킨 '아들'의 한 마디
(천안=뉴스1) 이재상 기자 =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간판' 문성민(35)은 2020-21시즌 코트보다는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가 2010년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V리그에 데뷔한 이래 쉽게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다.
지난해 4월 왼 무릎 수술을 받은 문성민은 예상보다 재활이 길어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현대캐피탈은 재창단에 버금가는 '리빌딩'을 감행했고, 주전 대부분이 20대 중반 선수들로 채웠다.
긴 재활의 시간 속에 지쳐 있던 문성민은 어느 날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아들 시호군(6)의 "아빠 왜 요새 배구 안 해?"라는 말이 뜨겁게 가슴을 때렸고,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9일 천안에 위치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 클럽하우스)서 만난 문성민은 다가올 경기 준비에 한창이었다.
문성민은 "젊은 선수들이 잘 뭉쳐서 생각보다 경기를 잘 하고 있다"며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오히려 후배들이 끌어주고 있다.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웃었다.
최근 현대캐피탈은 라이트 다우디 오켈로에 레프트로 김선호와 허수봉이 출전할 때가 많다. V리그에서 2차례 우승과 2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문성민이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웜업존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문성민은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봤다. 그는 "지금은 욕심 부린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감독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몸 관리를 잘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코트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문성민을 다시 깨운 가족의 힘
프로 10년차 이상이 된 문성민은 최근 팀에 새로 들어온 후배들과도 10살 이상의 터울이 있다.
그는 '세대 차이'에 대한 질문에 "개인적으로 안 느끼는데 선수들은 불편해 하는 것 같다"면서 웃었다. 문성민은 "가끔 어린 선수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데,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고 '세대차'를 쿨하게 시인했다.
V리그 최고 미남으로 많은 팬들을 거느린 문성민은 여전히 최고의 스타다.
항상 주목 받는 '슈퍼스타'였던 문성민이기에 2020-21시즌은 고난의 시기였다. 후배들이 운동할 때 재활에 집중했고,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길어지는 팀 연패를 바라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7개 팀 중 6위에 머물고 있다.
문성민은 "아들이 현대캐피탈 배구를 보다 아빠가 안 나오니 '왜 요새는 배구 안 해?'라고 묻더라. 그 말이 참 마음에 걸렸다.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성민은 지난달 20일 장충 우리카드전에서 10개월 만의 복귀전(3-2 승)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많은 축하 메시지도 받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기뻤다. "와이프가 아이들이 날 응원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줬는데 마음이 정말 뭉클했다"고 말했다.
문성민에게 첫째 시호군과 둘째 리호(4)군은 언제나 힘이 되는 존재다. 프로야구에서 '바람의 아들'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이정후(키움)처럼 '부자(父子) 배구' 선수를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문성민은 "원한다면 당연히 시킬 생각이 있다"면서도 "시호는 매일 바뀐다. 축구, 야구선수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는데 요새는 배구 이야기를 잘 안 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집에서 가끔 배구를 하며 장난을 치는데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빠를 흉내 내려고 하더라. 그런 부분에서는 또래 친구들보다 (배구가)빠른 것 같다"고 전했다.
◇ 문성민이 바라는 해피엔딩, 그리고 남자배구의 재도약
전성기를 지나 커리어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문성민에게 조심스럽게 '은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재활하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길게 생각한다면 무조건 배구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깊게 구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성민은 "최근에 복귀했고, 계속 경기에 출전하다 보니 (은퇴 생각은) 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남자배구는 상대적으로 여자배구에 비해 인기에서 밀리고 있다. 국가대표팀도 올림픽 등 큰 무대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대회서 성적을 내고 있는 여자대표팀에 비해 주목을 못 받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문성민은 새로운 젊은 선수들의 등장으로 다시 남자배구의 중흥기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충분히 인기가 있지만, 분명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포스트 문성민'은 임동혁(대한항공)과 임성진(한국전력)이다.
문성민은 "어린 선수 중에 임동혁도 잘하고 임성진도 대학 무대부터 유명했다"며 "좀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팀 후배인 허수봉을 향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수봉이는 군대도 일찍 다녀왔고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팀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어 "세터 (김)명관이도 감독님께 잘 배워서 성장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성민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가족들과, 나아가 팬들과 함께 호흡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번 시즌은 사실상 힘들어졌지만 2021-22시즌이 되면 다시 현대캐피탈이 우승 경쟁을 펼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그는 "팀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린 선수들과 잘 융화되는 것이 우선 목표"라며 "다음 시즌에는 무조건 봄 배구를 할 수 있게 하겠다.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천안유관순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팬들의 함성이 너무나 그립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뜨거운 각오를 표했다.
alexe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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