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두얼굴]③가격 인상·성희롱 이슈에도 묵묵부답..명품 '배짱 영업'
백화점 '슈퍼 甲' 에·루·샤·..입점 수수료 4배 이상 차이도
[편집자주]대한민국은 '명품 공화국'이다. 직장인들은 월급을 모아 로렉스를 플렉스하고 생활비를 아껴 샤넬백을 산다. 이른 새벽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시로 오르는 몸값에도 명품의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과분한 명품 사랑에도 한국 소비자들은 찬밥 신세다. 오히려 도를 넘은 고객 줄 세우기와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다. 명품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 봤다.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한 회사의 간부가 10년 넘게 십수명의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면 이 회사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불매운동이 일어나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대표이사의 공식사과로도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사를 이유로 외부로 이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는 비밀서약서를 받고는 가해자에 대한 조치 결과도 제대로 알려주지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샤넬 코리아 얘기다.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오픈런(개점 시간에 맞춰 물건을 먼저 사기 위해 매장으로 질주하는 현상)'은 계속되다 보니 외부의 질타는 그저 솜방망이일 뿐이다.
한국에서 명품 브랜드는 이미 '슈퍼 갑'이 돼 버린 지 오래다. 1년에 서너 차례씩 진행되는 가격 인상과 백화점 수수료 인하와 같은 갑질은 이제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폐해를 막으려면 유통업체들이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해 브랜드간 경쟁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품의 절대 무기인 '희소성'에 균열이 가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10년간 연봉 34% 오르는 동안 '샤넬 백' 약 60% 훌쩍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샤넬 '클래식 백 미디엄' 가격은 지난 2011년 550만원에서 지난해 864만원으로 10년 동안 무려 57%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 근로자 평균 연봉 상승률의 약 2배에 이르는 수치다.
샤넬의 스테디셀러인 클래식 백 미디엄은 지난해 5월 가격 인상 당시, 하루아침에 120만원이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어 5개월 반 만인 지난 11월 또 한 차례 가격을 인상하면서 864만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특히 샤넬 클래식 백 맥시 사이즈 가격은 1000만원을 돌파해 '샤넬 백 1000만원' 시대 포문을 열었다.
이처럼 거침없이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비싸도 잘나가는" 탓이다. 명품 브랜드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가질 것이란 믿음을 판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반복된 가격 인상은 '샤테크'(샤넬+재태크)와 같은 명품 수집 현상마저 부추기고 있다.
샤넬은 국내에서 성추행과 같은 비윤리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연일 '오픈런' 손님을 맞이하며 굳건하다. 지난해 샤넬 코리아는 화장품 영업부 관리자가 10년간 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한지 약 두 달 만에 샤넬 코리아가 내놓은 입장은 미온적이었다. 가해자 처분에 대한 세부 내용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는 등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샤넬코리아지부 관계자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뒤에도 샤넬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는 전혀 주춤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샤넬 코리아의 후속 대처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의 '카피' 논란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장인정신'을 이유로 상품을 고가에 판매하면서도 다른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훔쳐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300년 전통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포레르빠쥬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고야드의 캔버스 무늬를 베꼈다는 이유로 상표권 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최근 루이뷔통 첫 흑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버질 아블로 역시 벨기에 패션 디자이너 월터 반 베이렌통크의 2016년 F/W 컬렉션을 '카피'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돌체앤가바나·구찌·프라다가 디자인한 상품이 수 차례 인종차별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다.
◇갑 중의 '슈퍼 갑' 명품 브랜드…입점 수수료 4배 넘게 차별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배짱 영업은 단순히 상품의 희소성 또는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탓만은 아니다. 명품 브랜드와 국내 백화점 사이 '공생'이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백화점 총매출액은 30조원이다. 그중에서 3대 백화점인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백화점은 명품 브랜드를 상대로 을(乙)의 위치에 있다. 명품 브랜드가 백화점 전체 이미지와 매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3대 명품 브랜드'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가 입점한 백화점의 매출은 다른 매장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해 전국 백화점 매출 기준 3대 브랜드가 모두 입점한 Δ롯데 잠실 Δ신세계 본점·강남·센텀시티 Δ현대 본점 Δ갤러리아 명품관은 대부분 10위권 안에 포진해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발(發) 경기불황에서 백화점을 구원한 것도 명품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0년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내 대다수 상품군이 역 성장한 가운데 명품 매출은 오히려 15.1% 증가했다. 3대 명품이 입점한 백화점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전년 대비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모든 백화점에 명품 브랜드가 입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명품이 백화점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네이버(이웃) 브랜드마저도 3대 명품 여부를 입점 기준으로 두기 때문에 백화점은 명품 브랜드 유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요 명품 브랜드는 백화점 입점 과정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 여러 조건 중에도 입점업체가 백화점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대표적이다. 실제 주요 명품 브랜드가 국내 백화점에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매출의 10% 내외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일반 의류·잡화 브랜드 수수료율은 최고 30~40%로 책정해 차이가 4배 이상이다. 이외에도 명품 브랜드는 층수·매장 규모·입점 위치를 포함한 세부 계약 조건도 백화점으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1층 또는 2층의 좋은 위치를 우선 부여하거나 명품 특화 매장을 계속해서 키우는 방식으로 명품 브랜드에 특혜를 주고 있다"며 "그런데도 명품 브랜드들은 매장 매출이나 인기 상품 순위 같은 정보를 자세히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인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유통학회장을 지낸 안승호 숭실대학교 교수는 명품 브랜드의 콧대 높은 태도 앞에 "유통업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문제인 '희소성'을 완화하기 위해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발굴하고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간단히 말해 명품 브랜드의 국내 위상은 경쟁이 덜하기 때문"이라며 "소비자에게 사치품을 사지 말자고 말하기보다, 유통업계가 해외의 새로운 명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알려 제조업체 사이의 경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요가 분산되고 여러 브랜드가 경쟁하면 특정 명품에 대한 로열티(충성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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