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철회'·'표절'·'연기'·'사퇴'..도쿄올림픽 진짜 저주받았나?
"도쿄올림픽, 진짜로 저주받은 걸까요?"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이 '여성 멸시' 발언으로 결국 사퇴했습니다. 이를 두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은 12일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올림픽 저주설'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지난해 3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의 '저주받은 도쿄올림픽' 언급을 거의 1년 만에 재소환한 겁니다.
당시 아소 부총리는 국회에서 "194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삿포로 동계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고, 80년 모스크바올림픽도 당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국가들이 대거 참가하지 않았다"고 논란을 불렀습니다. 다시 40년이 흘러 갑작스레 터진 '코로나19 팬더믹'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습니다. 악담으로 치부됐던 도쿄올림픽 저주설, 진짜 '설'(說)로만 끝날까요.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건 2013년 9월입니다. 모리 위원장은 당시 올림픽 유치위원회 평의회장이었죠. 도쿄올림픽이 불과 5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설화(舌禍)로 갑작스레 물러나게 되면서 이제 도쿄올림픽 '유치 4인방' 모두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앞서 이노세 나오키(猪瀬直樹) 도쿄도지사는 의료법인 '도쿠슈카이'(徳洲会) 그룹으로부터 5천만 엔을 받은 문제로 올림픽 유치 불과 3개월 뒤인 2013년 12월 사퇴했습니다. 재선이 당연해 보였던 다케다 스네카즈(竹田恒和) JOC 회장 역시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IOC 아프리카 출신 위원들을 '검은돈'으로 매수했다는 혐의로 프랑스 사법당국 수사를 받았고, 2019년 1월 임기 만료로 퇴임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취소 위기에 몰리자 '1년 연기'를 관철시켰습니다. 총리 임기와 맞물린 집권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올해 9월 안에 올림픽을 다시 치른 뒤 이를 발판 삼아 집권 연장을 모색할 계산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결국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탓에 지난해 8월 총리직에서 중도 하차했습니다. 만약 올해 7월 도쿄올림픽이 개최된다면 '유치 4인방' 모두 권좌 바깥에서 대회를 관전할 처지로 전락한 셈입니다.
■ 경기장 설계안 '백지화'
'도쿄올림픽 저주설'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모리 위원장 사퇴 이전부터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은 숱은 논란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 유치전을 위해 2011년 11월, 주 경기장이 될 새로운 국립경기장 디자인(안)으로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2016년 별세)의 디자인을 선정했습니다. 하디드는 우주선 모양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건축 거장(2016년 별세)입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자국의 첨단 건축기술로만 지을 수 있는 우주선 모양의 주 경기장을 선보이겠다"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큰소리를 쳤습니다.
문제는 건설비였습니다. 리모델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혈세 낭비 논란'이 고조되자, 아베 총리는 하디드의 디자인을 전면 백지화하고, 재공모를 거쳤습니다. 총 공사비 2천651억 엔(약 2조 8천억 원)을 1천550억 엔(약 1조 6천억 원) 밑으로 줄이는 게 목표였습니다.
새 국립경기장은 약 36개월 공사를 거쳐 2019년 11월 완공됐습니다. 총 공사비로 1천569억 엔(약 1조7천억 원)이 들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올림픽 유치 전후 과정에서 한 약속을 깨고 만든 이 경기장에선 개·폐막식과 육상, 축구 등의 경기가 치러질 예정입니다.
■ 대회 엠블럼, 표절 논란 후 '폐기'
주 경기장뿐만 아닙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2015년 7월, 일본의 유명 아트 디렉터 사노 겐지로(佐野硏二郞)가 제출한 작품을 대회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졌습니다. 벨기에의 그래픽 디자이너 올리비에 데비가 2년 전 제작한 벨기에 극장 로고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죠. 사노는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친 일이 전혀 없다"며 표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그가 앞서 디자인인 음료 업체 산토리의 경품용 토트백 문양이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도용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직위는 그해 9월, 공식 엠블럼을 또 '백지화'하고 철회했습니다. 이후 미쓰이(三井)부동산과 일본항공 등 도쿄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일본 기업 21개사는 엠블럼 관련 홍보물을 수정·철거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과도한 지출 논란이 불거진 주 경기장 디자인이 백지화된 데 이어 도쿄올림픽을 상징하는 핵심 사업들이 잇달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일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의 우여곡절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올림픽 개최 도시 도쿄도(東京都)의 불볕더위 때문에 마라톤과 경보 경기는 홋카이도 삿포로(札幌)에서 분산 개최됩니다. 남자 마라톤 선수들은 8월 8일 아침 7시에 삿포로 거리를 달린 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와 오후 8시 폐막식 직전에 메달 시상식을 갖게 됩니다. 근대 올림픽 124년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실 도쿄올림픽 '1년 연기' 자체가 전례 없는 일이긴 하죠. 만약 고육지책으로 도쿄올림픽이 아예 관중 없이, '무관중'으로 치러질 경우 이 역시 사상 최초의 일이 됩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근대올림픽 역사에서 도쿄올림픽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예외'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도쿄올림픽이 '숱한 논란과 시련을 극복한 대회'로 기록될지, 아니면 '저주론에 시달리다 결국 무산된 대회'로 기록될지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 지난해엔 성화 봉송 시작 이틀 전인 3월 24일 연기가 발표됐습니다.
올해 성화 봉송은 3월 25일 후쿠시마(福島)에서 시작합니다. 이를 앞두고 3월 10~12일 온라인으로 열리는 137회 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자리에서 '도쿄올림픽 저주론'의 결말도 함께 확인될 듯합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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