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부동산 불패? 맥도날드는 일찍이 눈떴다 [영화로운 경제]

임형준 2021. 2. 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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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경제-3]
‘영화로운 경제’는 영화를 통해 우리 주변의 다양한 경제 현상들을 살펴보는 연재물입니다. 금융·부동산 등 투자 관련 분야부터 산업과 생활경제까지 흥미롭고 유익한 경제 이야기를 쉽게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 모아보기]

투자와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뜨거운 지금, 사람들의 귀와 눈은 각종 ‘호재’에 모이고 있습니다. 애플과 현대자동차의 협업 여부에 대한 소문에 주식 시장에선 수십조 원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고,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관련 개발 계획이 하나씩 구체화될 때 마다 역사 개발 예정지 주변 집값이 ‘점프’를 합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을 생각해보면 벌써 이런 집값 점프를 지켜본 지가 꽤 된 것 같습니다.

혹시 집 근처에 신세계그룹의 대형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떨까요? 아마 대부분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대형 편의시설이 들어오는 걸 반길 겁니다. 생활 편의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호재로 작용할 거란 생각도 하겠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유명 쇼핑몰들은 대체로 개발이 완료단계인 곳보다는 초기 개발 단계나 동네가 슬슬 커지기 시작할 때 들어옵니다. 대규모 편의 시설이 갖춰진 다음엔 주변 개발 속도가 높아지거나 땅값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고, 환경 개선과 소비 인구 유입에 따라 상권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약 70년 전부터 이런 부동산 시장의 속성을 간파하고 적절히 활용해 한 분야의 세계 1위 브랜드를 만든 기업이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 회사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브랜드이기도 한 ‘맥도날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52세에 시작한 맥도날드 스토리…영화 ‘파운더’

영화 '파운더'의 공식 포스터.

영화 ‘파운더’는 세계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의 탄생기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화는 맥도날드의 실질적 창업자인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 분)이 밀크셰이크 제조 기계를 팔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1954년 당시 52세였던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제품(멀티 믹서)을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이 제품을 6개나 주문한 매장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이 가게가 맥도날드 형제(리차드 맥도날드, 모리스 맥도날드)가 창업한 ‘맥도날드’였습니다. 맥도날드는 주문한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음료가 단 30초 만에 나오는 ‘패스트푸드’를 고안해낸 후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레이 크록은 사업 자금을 위해 담보로 잡은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는 등 이런 저런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결국 성공적인 확장을 이뤄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맥도날드 형제와 갈등도 그려집니다. 점포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한 레이 크록의 경영 방침과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맥도날드 형제의 생각이 서로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레이 크록이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270만 달러(약 30억 원)를 맥도날드 형제에게 지급하고 맥도날드 브랜드를 차지하게 됩니다. 영화에선 맥도날드 수익의 1% 또한 맥도날드 형제에게 로열티로 추가 지급한다는 구두계약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두 계약을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해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에 따르면 오늘날 이 로열티의 가치는 연간 1억 달러(약 1100억원)에 이릅니다.)

미국의 상징이 된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날드는 미국의 지역 곳곳에서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매장 수를 늘려나갔다. /사진=영화 `파운더` 공식 스틸컷

레이 크록은 영화 속에서 다소 탐욕적인 경영자로 그려집니다.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 ‘맥도날드’를 빼앗는 것은 물론, 한 점주의 아내가 마음에 들자 그녀와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의 배우자까지 가로채다니, 그야말로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얻어내는 인물인 겁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읽어낸 그의 ‘눈’은 정말 정확했습니다. 그가 영화에서 맥도날드를 설명한 여러 장면에서 이런 면이 잘 드러납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망설이는 맥도날드 형제에게 레이 크록은 “미국을 위해서 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는 미국의 작은 마을마다 있는 교회와 법원에 맥도날드를 비교하면서 “품위 있는 사람들이 모여 미국 국기가 수호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모임 장소”로 표현합니다. “맥도날드는 ‘미국의 새 교회’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맥도날드는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꼽힙니다. 레이 크록이 처음부터 구상했던 브랜드가 탄생한 겁니다.

이런 성공에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1950년대 미국이 경제적 성장과 번영을 시기를 맞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미국에선 현대적인 가전제품 등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아직도 가정에서 유용하게 쓰는 세탁기, 진공청소기, 토스터 같은 가전이 모두 이 시기에 등장해 대중화됐고,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고급 자동차의 판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 수준은 상향평준화 됐습니다. 그리고 중산층의 욕망은 균질한 소비로 나타났습니다. 집집마다 빠르게 텔레비전이 보급돼 비슷한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도시 곳곳에 비슷한 모습으로 지어진 주택들에서 사는 사람이 늘어난 거죠.

한국의 경우 산업화를 통해 생활수준이 빠르게 높아졌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던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귀했던 텔레비전과 가전제품들이 하나 둘 흔해지고 어느새 모든 집에 그런 가전이 하나씩 생길 때 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결국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됐으니까요.

맥도날드는 균질한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전국 어디에서나 판매하는 프랜차이즈였습니다. 이런 소비사회에 ‘안성맞춤’인 셈이죠. 그야말로 1950년대 이후 미국 소비사회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한 브랜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맥도날드는 오늘날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여겨집니다. 미국의 외식업 문화와 청소년 문화는 물론,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소비주의라는 커다란 개념까지도 한 단어에 녹아있는 겁니다. 또한 맥도날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미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습니다.

맥도날드는 세계적 ‘부동산 기업’이다

레이 크록은 본사가 직접 유망한 지역의 부지를 구매하고 매장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전국에 매장 수를 빠르게 늘렸다. /사진=영화 `파운더` 공식 스틸컷

그런데 맥도날드의 성공은 미국적 욕망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영화 ‘파운더’에서도 그려지듯이 맥도날드가 성공 가도에 오른 것은 ‘부동산’에 눈을 뜬 시점부터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맥도날드 지점이 많이 생기고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큰 수익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 레이 크록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맥도날드의 이름이 유명해졌는데도 본사의 수익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습니다. 본사에서 쓰는 비용에 비해 점주들로부터 받는 로열티가 너무 적었던 겁니다.

이 때 재무 전문가인 해리 소더본(B.J. 노박 분)이 레이 크록에게 접근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합니다. 맥도날드 지점이 들어설 땅을 본사가 구입한 다음, 점주들에게서 임대료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점주들이 매장을 지을 위치와 부지를 정하고 직접 매장을 차린 다음 맥도날드 본사는 운영을 도우며 로열티만 받았는데, 갑자기 임대업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겁니다.

이 방식으로 맥도날드는 초고속 성장을 이뤄냅니다. 유망한 지역을 골라 토지를 매입한 뒤 맥도날드 매장을 짓고, 당시 잘나가던 ‘맥도날드’가 생겨 사람들이 몰리면 주변 상권과 토지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그 다음엔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매장을 더 빠르게 늘리는 게 맥도날드의 전략이었습니다.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패스트푸드 브랜드 중 하나다. /그래픽=조보라

이런 경영 전략은 수많은 지역의 상권을 정확히 분석하고 좋은 위치의 토지를 확보해야만 성공 가능합니다. 사실상 맥도날드가 ‘부동산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실제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수익 구조를 보면 로열티 수입보다 임대료 수입이 약 2배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19년 기준 전 세계 120여 개국에 3만 8000개가 넘는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주요 상권에 좋은 땅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레이 크록 또한 맥도날드를 부동산 회사로 정의했습니다. 1974년 텍사스 대학을 찾아 강연에 나선 레이 크록은 학생들에게 “내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햄버거 사업’이라고 답하자, 레이 크록은 “틀렸다. 난 햄버거 장사가 아니라 부동산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삼성 키워낸 이건희의 ‘눈’도 다르지 않았다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왼쪽)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매경DB

앞서 신세계그룹의 ‘스타필드’의 개발에서 맥도날드의 경영 전략과 비슷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접근은 오늘날엔 그리 새롭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세계그룹과 관련이 있던 한 유명한 인물이 약 30년 전에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과 똑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은 조금 흥미롭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입니다. (신세계는 1991년 삼성에서 계열 분리됐습니다.) 1990년대 초 한 사장단 모임에서 이건희 회장은 당시 신세계 사장에게 백화점은 무슨 산업인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세계 사장은 “백화점은 상품 유통업”이라고 답했고, 이건희 회장은 “백화점은 부동산업”이라고 정의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대형백화점은 ‘소비사회’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는 점에서 맥도날드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맥도날드가 지역 곳곳 상권의 주요 위치를 선점해 나갔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대형 백화점 건설에 따라 주변 상권과 토지의 가치가 달라졌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레이 크록처럼 이러한 산업의 속성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희 회장의 산업 정의는 이것 외에도 여러 종류가 전해집니다. ‘호텔은 장치산업이자 부동산업’, ‘반도체는 양심산업이면서 시간산업’ 등입니다.

호텔은 위치가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할 뿐 아니라, 내부의 수많은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호텔 방 하나에는 1000개가 훨씬 넘는 비품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비품들의 질이 호텔 사업의 성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엔 수천 명의 인력이 수백 개의 공정을 통해 협업하려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서로 믿는 풍토가 중요하기 때문에 ‘양심산업’이고,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는 게 승패를 가르는 산업이기 때문에 ‘시간 산업’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어록에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사업의 표면 외에도 사업의 ‘본질’을 이해해야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스트푸드 브랜드를 만들어낸 경영자도, 작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경영자도 그 성공의 출발점에선 비슷한 생각을 했던 셈입니다.

2021년, 과거 어느 때보다 비즈니스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 친환경 에너지, 블록체인, 클라우드… 정말 많은 분야가 ‘미래 산업’으로 평가받으며 고속 성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산업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혜성처럼 떠오를 기업은 어떤 곳일까요?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기대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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