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댁에도 보일러 놔드려야 겠어요".. K-보일러, 시베리아 녹였다
러시아, 코로나 장기화·겨울 한파로 보일러 수요 늘어
韓, 작년 러시아에 보일러 2470억원 수출…역대 최고
"한국 제품 믿어"…국민브랜드로 韓 기업이 선정되기도
지난 2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최대 냉난방 설비 전시회인 ‘아쿠아썸 모스크바 2021’에선 한국 보일러 업체를 향한 현지의 관심이 뜨거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현장에 설치된 국내 기업 부스에 딜러와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러시아 소비자들은 ‘보일러’하면 한국 브랜드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국내 기업들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높다"면서 "최근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른 독립국가연합(CIS)에서도 한국 보일러에 큰 관심을 보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10년간 러시아 보일러 수출 규모 3배 늘어
한국 보일러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K-보일러’의 위력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러시아에 판매한 난방보일러(석탄·유류·가스식 등) 수출액은 총 2억2241만달러(약 2471억원)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 규모다. 1억7630만달러를 판매했던 전년보다 약 26% 늘었다.
한국의 대(對)러시아 보일러 수출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11년에는 수출액이 약 54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까지 3배 이상 늘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293만달러)과 비교하면 약 75배 커졌다.
이번 겨울은 한파의 영향도 컸지만,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보일러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러시아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 보일러는 ‘쉽게 고장 나지 않는다’ ‘품질은 최고’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보일러를 설치하거나 수리하려면 기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외부인 접촉을 꺼리면서 가급적 잔고장이 적은 보일러를 선호하고 있다"라며 "한국 보일러는 믿고 쓸 수 있다는 인식 덕분에 코로나19에도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매년 성장하는 러시아 보일러 시장, 유럽 진출 교두보
한국 보일러는 러시아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여전히 러시아 일부 지역에선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종종 전압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데 한국 보일러는 낮은 전압에서도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강풍에도 보일러에 공기를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공기감시장치(APS)’ 기술이 탑재된 점도 특징이다. ‘보일러 종주국’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기업들을 제치고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지에선 ‘나비엔(Navien)’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국내 기업 경동나비엔(009450)이 러시아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94년부터 러시아 시장에 수출을 시작한 나비엔은 지난 2019년 러시아 소비자들이 꼽은 국민브랜드에 3회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현지 시장에선 비록 후발주자였지만, 현지화 전략으로 소비자 신뢰를 얻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귀뚜라미도 한국 브랜드에 대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러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귀뚜라미는 콘덴싱 가스보일러부터 기름보일러, 전기보일러, 펠릿보일러 등 다양한 제품군을 러시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보일러뿐 아니라 온돌매트 등 이색 난방 제품으로 시장 내 독자적인 입지 구축에 나서는 모양새다.
국내 보일러 기업들의 러시아 시장 공략은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러시아가 유럽과 다른 CIS 국가들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자흐스탄 등 다른 CIS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잘 팔린 제품이라고 하면, 믿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러시아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보일러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업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러시아 보일러 시장은 매년 평균 5%씩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4억4000만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오는 2025년 약 5억770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중앙난방시스템이 최근 개별난방으로 전환되는 과도기 단계에 와 있다"면서 "개별난방에 대한 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인데, 국내 기업들에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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