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살린 '슈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공식 취임
방역, 백신, 경제 등 가시밭길 예고
2012년 붕괴 위기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구해 내며 ‘슈퍼 마리오’로 불린 마리오 드라기(74)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탈리아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좌우의 정치적 이념을 떠나 거의 모든 주요 정당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백신 접종,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위기 등 모든 상황이 녹록지 않아 가시밭길이 예고된 상태다.
13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라기 신임 총리와 23개 부처를 이끌 각료들은 이날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국정 운영 개시를 알렸다. 드라기 신임 총리는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 수립 이래 30번째 총리로 기록됐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연정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꾸준히 차기 총리 물망에 올랐다. 이력 역시 화려하다. 이탈리아 재무부 고위 관리와 중앙은행 총재를 거쳐 세계은행 집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는 8년간 ECB 총재를 맡으면서 채무 위기에 빠진 유로존을 구해냈다. 때문에 이름보다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드라기 내각의 취임으로 '오성운동ㆍ민주당ㆍ생동하는 이탈리아' 3당 연립정부가 붕괴하면서 시작된 정국 위기는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드라기 신임 총리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주요 정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중도 좌파 성향의 3당은 물론 야권 우파연합의 수장 격인 극우 정당 동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 등도 드라기 내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드라기 내각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 정당은 또 다른 극우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유일하다. 신임 총재로서는 거국내각 구성이 성사된 것은 물론, 의회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바탕으로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상황과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는 과제가 놓여있다. 작년 2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바이러스 대규모 전파가 시작된 이탈리아는 지금까지도 하루 1만명대 감염자와 400명대 사망자가 나오는 등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두 달 넘게 야간 통행과 장거리 여행 제한 등 고강도 방역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백신 공급량마저 급감하면서 ‘8월 이내 전 국민 집단 면역 형성’이란 정책 목표 실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경제위기 극복 역시 또 다른 도전이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경제는 작년 8.8% 역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당국은 올해 바이러스 사태가 호전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탈리아 경제가 6.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탄력이 붙을지는 미지수다. 내년에도 2019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성장이 뒷걸음치는 가운데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규모는 GDP 대비 각각 160%, 10% 수준으로 급증하며 2012년의 재정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팽배하다. 드라기 내각으로서는 코로나19가 초래한 단기적 경제 위기 극복은 물론 경제시스템을 혁신해 근 20년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온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경제 충격 해소 명목으로 이탈리아에 제공키로 한 2,090억유로(약 280조원)를 어떻게 쓰느냐 역시 당면과제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었던 만큼, 회복기금 사용 계획 수립이 정치적으로 드라기 내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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