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동의의결'이 뭐길래..'애플에 면죄부' 논란 불거진 이유
이재용 재판 검토한 '치료적 사법' 유사
과징금 때렸다면 최대 5억원 불과해
애플·공정위·피해자·소비자 모두 '윈윈'
아이폰 사용자는 수리비·보험료 10%를 할인받고, 초·중등학교 학생들은 100억원 규모의 디지털기기와 콘텐츠를 제공받을 예정입니다. 중소기업이 스마트 제조에 나설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원센터도 설립됩니다. 통신사 역시 애플과 ‘갑질 계약’을 수정하고 애플과 대등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애플코리아가 갑자기 이런 ‘기부(?)’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애플코리아에 대해 과징금을 물리려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애플코리아의 ‘동의의결’안을 수용하기로 했기 때문이죠.
용어도 생소한 ‘동의의결’제도. 공정위는 왜 애플코리아에 과징금을 물리지 않고 동의의결을 채택해 봐주기 논란을 맞게 됐을까요.
한미FTA 이후 도입된 동의의결제
동의의결은 공정위가 제재를 내리기 전에 불공정행위를 한 사업자가 먼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방안을 제시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2011년 12월 한미FTA 이행 방안 중 하나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일종의 합의제도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보통 공정위는 불공정행위가 적발되면 과징금 부과(행정제재)를 내리고, 행위가 매우 중대하다면 판단하면 검찰 고발(형사제재)도 합니다. 동의의결이 수용되면 피심의인은 이 두가지 제재를 피하게 됩니다. 대신 공정위 제재와 비슷한 수준의 자진시정방안을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내놓습니다. 자진시정방안에는 피해자를 위한 상생기금도 있고, 계약 개선 사항도 담겨 있습니다. 과징금은 모두 국가로 귀속되지만 자진시정안은 피해자를 직접 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이런 동의의결제는 사실 국내에 매우 생소한 제도입니다. 독일식 대륙법 체계를 도입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영미식 분쟁해결시스템이 잘 맞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걸맞은 제재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춰주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제도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영미식 분쟁해결 방식은 좀 다릅니다.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불공정한 행위를 한 자와 피해자 간 당사자간 합의가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습니다. 불법이 발생하면 죄를 지은 자를 구속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죄가 발생한 원인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도 강합니다.
이를 두고 ‘변칙 플리바게닝(사법거래)’이라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재판부가 먼저 가이드라인을 준 뒤 이를 잘 따랐다는 이유로 형량이 감해진다면 ‘봐주기 재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 위험에 대한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 하는 데까지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영미식 사법제도가 아직은 우리나라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점도 재판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갑질 혐의’ 애플 과징금 부과가 맞았나
다시 돌아와서 공정위가 애플코리아에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고 왜 동의의결을 수용했는지 따져봅시다.
공정위가 애플코리아를 제재하려면 애플이 통신사에 ‘갑’이었고,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매출액이 얼마인지 등 두가지가 입증돼야 합니다.
먼저 공정위는 애플코리아와 통신사 중 누가 ‘갑’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양사 모두 상호 협력 관계라는 점이 있기 때문이죠.
삼성과 LG와 다르게 애플은 상대적으로 통신사에 ‘갑’으로 인식됐던 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스마트폰의 아이콘인 ‘아이폰’ 덕분이죠.
아이폰을 유치해야 가입자 확보에 나설 수 있다는 판단에 KT를 시작으로 통신사는 경쟁적으로 애플과 굴욕적인 계약을 맺었습니다. 애플은 구매보조금을 거의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애플과 통신사가 갹출해 공동 광고기금을 만든 뒤, 이를 마음껏 활용해 애플 제품 광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통신사도 애플 덕분에 가입자도 늘리고 매출도 확대하는 효과를 봤습니다. 누가 갑이냐 을인지 명확하게 판가름하기 어려웠던 셈입니다. ‘갑과 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면, 법원에서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과징금입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려면 명확하게 불공정행위와 관련한 매출액을 산출해야 합니다. 애플 갑질 혐의는 대부분 서비스 분야에서 이뤄졌습니다. 광고기금 활용, 특허 무료 사용 등입니다. 애플의 기여분과 통신사의 기여분 등을 명확하게 발라낸 이후 애플의 불공정행위 분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해야하는 데 사실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는 보통 정액과징금을 부과합니다. 문제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정액과징금 상한액은 불과 5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공정위가 향후 재판을 고려한다면 애플코리아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최대 5억원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정위는 애플이 처음 제시한 상생기금 500억원을 1000억원으로 상향시켰습니다. 애플 역시 공정위로부터 ‘갑질’을 했다는 확인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향후 다른나라에서 비슷한 사유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낮춘 셈이죠. 소비자도 아이폰 할인혜택을 받았고, 통신사 역시 갑질 계약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동의의결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라고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동의의결 이행여부 철저히 감시해야”
동의의결이 ‘봐주기’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공정위가 동의의결 이행여부를 철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공정위는 2011년 동의의결 제도가 도입된 이후 다음-네이버 시장 지배적지위 남용행위, SAP코리아 거래상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진시정안을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기금을 마련한 뒤 이를 제대로 쓰는 지 확인하기 쉽지 않아 동의의결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셌고 결국 ‘봐주기’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공정위 이번 애플 동의의결안에 대해 회계법인을 통해 감시하고 매 반기별로 이행상황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애플코리아 동의의결안 수용을 발표하면서 “자신시정안에 대한 이행점검을 제3기구에 맡기는 등 이행관리 점검도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이행감시를 위해서는 공정위 내부에 별도 이행감시 조직을 구성해 동의의결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시장상황에 맞춰 시정조치안도 변경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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