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80년 만에 미·일 관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김태훈 2021. 2. 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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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루스벨트 "일본은 침략자.. 진주만 되갚을 것"
2021년 바이든 "일본은 핵심 동맹.. 함께 中에 맞서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올해는 일본이 1941년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발발한지 꼭 80년이 되는 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미국은 진주만 공습 희생자들의 80주기를 기리는 대대적 추모 행사를 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미·일 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게 국제사회의 평가다. 새로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동맹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중국 포위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나섬에 따라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1941년 루스벨트 “일본은 침략자… 진주만 되갚을 것”

1941년 12월7일 일본은 해군 항공모함을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해 하와이 쪽으로 보냈다. 미국 시간으로 일요일이던 그날 아침 항모에서 일제히 출격한 일본 전투기들이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공습했다. 여러 척의 군함이 폭격을 맞고 수많은 수병이 목숨을 잃었다. 일부 군함은 그대로 침몰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여론은 크게 악화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은 “1941년 12월7일은 미국 역사에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며 군을 강하게 질책했다. 일본은 물론 독일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1941년 12월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진주만에서 뼈저린 패배를 당한 미 해군은 일본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 절치부심하던 차에 그로부터 꼭 6개월 뒤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은 일본 해군 항모 4척을 모두 격파함으로써 태평양의 제해권을 도로 차지했다.

그 뒤로는 미국의 일방적 우세였다. 미국은 독일이 먼저 항복하고 난 뒤인 1945년 7월 독일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서 영국, 소련(현 러시아)과 3자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일본을 향해 ‘무조건 항복’을 권유했으나 일본은 거부했다.

그러자 미군은 1945년 8월6일 갓 개발한 신무기 원자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최소 9만여명에서 최대 16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흘 뒤인 1945년 8월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폭이 투하됐다. 사망자는 6만∼8만명으로 추산된다. 결국 그로부터 6일이 지난 8월15일 일본 정부는 미국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정식 항복 문서 조인식은 그해 9월2일 도쿄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 군함 ‘미주리’호 위에서 열렸다.
1945년 9월2일 일본 정부 대표(오른쪽)가 미국 군함 위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원수(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1년 바이든 “일본은 핵심 동맹… 中에 맞서야”

이처럼 2차대전 때 적대국이었던 미·일 관계는 바이든 새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밀월’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취임 후 아시아 국가 정상과의 첫 통화였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보다 1주일 빨랐다. 이를 두고 “바이든 정부가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비중 있는 동맹이자 우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과 일본을 단단히 묶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 두 사람의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그리고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미·일 협력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차단,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을 견제하지 못하면 미·일 모두 중국으로부터 직접적 군사 위협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두 나라 다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바이든 시대 들어 미·일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2019년 7월 일본 요코스카 주일미군 기지에서 미·일 양국 국기가 내걸린 가운데 열린 미 해군 제7함대 사령관 이·취임식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미·일 안보조약이다. 이 조약 제5조는 ‘일본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 각자의 헌법에 따라 공동으로 대처하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현재 일본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만약 미국이 센카쿠 열도를 ‘영토분쟁 중인 지역’으로 판단한다면 센카쿠 열도에서 일·중 간 무력충돌이 벌어져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미·일 정상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총리에게 “센카쿠 열도가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함께 지켜줄 것”이라고 확실히 약속했다. 중국과 맞서는 일본 입장에선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함을 느낄 법한 대목이다. 여기에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의체 ‘쿼드(Quad)’도 여전히 건재하다. 진주만 공습 80년을 맞은 올해 미·일 관계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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