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보다 모시기 힘들어" 기업들의 인플루언서 공략기

맹하경 2021. 2. 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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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광고는 옛말..인플루언서 확보=마케팅 능력
'뒷광고' 논란 후 '쩐의 전쟁' 된 인플루언서 모시기
"직접 키우자" 기업들, 오디션에 기획사까지 차려
이른바 뒷광고 논란에 휘말려 사과 영상을 올린 유튜버들. 지난해 하반기 뒷광고 문제가 터진 이후 기업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고민은 깊어졌다. 유튜브 캡처
"이영애, 전지현이 나와서 '나처럼 이뻐질 수 있다'는 광고가 안 먹히잖아요."
A 화장품 기업 직원

기업들의 '인플루언서 모시기' 세태에 대해 얘기하던 뷰티계열 대기업 직원은 완전히 뒤바뀐 마케팅 공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과거 S급 톱배우가 출연하는 TV 광고를 제작할 때보다 요즘 대형 인플루언서 섭외비가 더 비싸다"며 "이제 신제품 출시 일정이 나오면 일단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누구를 잡을지가 회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TV 광고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마케팅 시대가 저물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를 만나던 유통업계 기업들, 그중에서도 브랜드 파워보다는 섬세한 착장과 후기 등이 구매에 결정적인 화장품, 패션, 식품업계는 이제 디지털 마케팅 능력이 생존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고객들이 라이브커머스로 몰려가는 것도 물건을 만져볼 순 없지만 그만큼 믿을 수 있고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최근 마케팅 공식에선 추상적인 이미지보다 '리얼함'의 가중치가 더 높다. 실제적인 정보를 생생하고 속도감 있게 전달해야 구매 전환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디지털 마케팅 세계에서 일종의 '영업맨' 역할을 하는 인플루언서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일단 뿌려!" 관례로 터진 '뒷광고'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영상으로 소통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팬덤을 확보한 인플루언서는 디지털 마케팅의 핵심 요소로 안착했다. 인플루언서와 팔로워(구독자) 사이에는 신뢰가 깔려 있고 실시간으로 대화가 오가면서 활발한 소통이 이뤄져 홍보와 매출 증대 효과가 높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초반에 유통가는 마케팅 비용을 최대한 아끼면서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팔로워가 1,000명에서 1만명 사이인 이른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공략했다. 보통 팔로워 1만명 이상은 '매크로 인플루언서', 팔로워 100만명 이상은 '메가 인플루언서'로 분류한다.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관계자는 "팔로워가 1만~2만명인 먹방 BJ들에게 일단 상품을 뿌리고 보는 게 일종의 관례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떤 식으로 강조해 달라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수준이었고 어떻게 방송을 하는지 모니터링은 소홀했다"며 "그땐 먹는 장면을 많이 노출시키는 데에만 집중해 질보다 양이 중요했던 시기"라고 전했다.

그러다 '뒷광고' 논란이 불거졌다. 금전을 받고 찍는 홍보 영상이라는 점을 숨겼던 BJ들의 사과 영상이 무더기로 쏟아졌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뒷광고 규제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양성화되면서 기업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유튜버 뒷광고 논란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8월 대형 MCN(다중채널네트워크·일종의 BJ 기획사) 샌드박스가 광고 미표기 영상 문제에 대해 올린 사과문. 샌드박스 유튜브 캡처

'인성 논란' 불안한데… 모델료도 부담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검증이 덜 됐거나 이제 막 유명세를 탄 경우 과거 문제, 인성 문제 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면 대형 인플루언서는 평판을 걸고 일하기 때문에 광고라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며 "이 때문에 팔로워가 수백만명인 인플루언서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불러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들이 시도한다"고 덧붙였다.

비용과 위험 부담으로 인해 팔로워 규모가 작더라도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찾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배경이다. 연예 기획사 급의 철저한 관리 체계 아래에 있는 유튜버와 전략적으로 협업하거나 아예 직접 신인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도 요즘 양상이다.

신세계 통합몰 SSG닷컴이 지난해 말 구독자 약 230만명을 보유한 뷰티 유튜버 이사배와 진행한 화장품 판매 라이브 방송에는 1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접속했다. SSG닷컴 제공

오디션 열고 기획사 차리는 기업들

지난달 패션기업 LF가 진행하는 오디션이 열렸고 여기에는 '옷 좀 입는다'는 500여명이 몰렸다. 오디션 우승 혜택은 패션 전문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이다. 상금 1,000만원과 쇼핑 지원금, LF 브랜드 화보 모델 혜택도 있다.

LF가 진행하는 패션 유튜버 오디션 '내일부터 나도 유튜버'에서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패션 인플루언서들. 이들은 유튜브 구독자 7만~60만명을 보유했다. LF 제공

패션쇼핑몰 무신사는 지난해 11월 인플루언서 육성 전문 '오리지널 랩'을 설립했다. 패션 전문 인플루언서를 배출하는 게 목표다. LG생활건강은 경력단절여성, 취업준비생, 미취업 남성 등을 대상으로 공개 모집을 해 뷰티 유튜버로 성장시키는 '내추럴 뷰티크리에이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문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인플루언서를 제품 기획 단계부터 투입하기도 한다. H&B(헬스&뷰티)숍 브랜드 랄라블라는 지난해 '달트' '윰쓰' 등 뷰티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만든 립스틱, 아이섀도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마트24, GS25 등 편의점도 요리, 먹방 유튜버와 손잡고 샌드위치와 도시락 등을 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튜버 등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체들이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정도로 인플루언서 시장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유명 인플루언서 확보 전쟁뿐 아니라 효과 좋은 채널로 키우려는 인큐베이팅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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