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언론 톺아보기] 프랑스 보안법과 언론 자유,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 2021. 2. 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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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

지난해 11월 말부터 프랑스에서는 '포괄적 보안법' 제정을 규탄하는 언론인들과 인권운동가를 비롯, 수많은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살인이나 테러 대상이 되지 않도록 이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이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보안법 텍스트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제24조다. 이 조항은 심리적 혹은 신체적 훼손을 목적으로 경찰의 얼굴이나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긴 이미지를 유포하는 경우 그 수단과 방식에 무관하게 1년의 징역과 4만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의 옹호자들은 “문제가 되는 것은 악의적 의도를 갖고 찍은 경찰의 이미지”일 뿐이라 주장했지만, 시민들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도성'을 입증할 판단 기준도 불명확할 뿐 아니라 공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조항 이외에도 이 법은 '감시사회'를 연상케 하는 조항들이 존재한다. 경찰이 드론을 이용해 공공장소에서 시민을 감시할 수 있게 한다거나 경찰의 바디캠 영상을 실시간 생중계하도록 하는 조치들이 그런 사례다.

▲게티이미지.

경찰의 폭력성이 유럽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수준인 프랑스에서는 보안법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시위 진압 과정에서 언론인들이나 일반인에 대한 경찰의 폭행이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최근 시위 과정에서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기자 수백 명이 취재를 제지 당하거나 폭행 당하거나 체포된 것이다. 이처럼 경찰의 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시민 반발이 거세지고 유엔인권이사회·유럽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명하자 최근 프랑스 정부는 이 조항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매체와 언론인들은 조항 폐기를 주장하며 저항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보안법 관련 프랑스 기사를 찾다가 우연히 반가운 얼굴들을 발견했다. 몇 년 전 파리 방문 때 만났던 독립 언론 '메디아파르트'(Mediapart)의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언론의 자유는 저널리스트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 권리다'라는 구호가 새겨진 플랭카드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한 자사 사이트와 SNS 채널을 통해 언론 자유와 보안법의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메디아파르트뿐 아니라 수많은 매체와 SNS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왜 보호돼야 하는 것인지, 언론의 자유를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등 무수한 논쟁들이 쏟아지고 있다. 보안법 반대 논의가 언론 자유뿐 아니라 언론 책임과 역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 최대 규모의 신문사인 '우에스트 프랑스'(Ouest-France)는 보안법 관련 기사를 통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이 공적 기관의 행위에 대해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언론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면서 “이 자유는 잘못 휘두르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으므로 분별력을 가지고 행사해야 한다. 언론 자유의 남용에 대한 규탄은 필수이며 무책임한 언론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자유는 저널리즘 윤리를 기반으로 행해져야 한다”라는 우에스트 프랑스의 전 사장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프랑수와 레지스 위탱(Franois Rgis Hutin)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제도 옹호자들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언론인과 언론단체들은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 도입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대다수 독자들이 이들 의견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껏 보여준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가 '언론 자유의 남용'으로 비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보다는 이 자유의 의미를 성찰하고 저널리즘 윤리를 동시에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시민의 권리이지 저널리스트의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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