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빌라왕' A씨를 찾아낼 수 있을까

류인하 기자 2021. 2. 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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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년 10월 PD수첩에 방영된 영상. A씨의 형 인터뷰 장면. mbc영상 캡쳐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빌라왕 A씨를 잡을 수 있을까.

A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9년 10월 <PD수첩> 방송을 통해서다. 당시 방송에 소개된 A씨는 594채의 집을 소유한 ‘큰손’이었다. 보유 규모로 보자면 전국 1위였다. 그러나 방송 당시 A씨가 소유한 5채의 집에서 이미 9억2100만원의 전세보증보험 사고가 발생한 상태였다. 집 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국가(주택도시보험공사)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지급했다는 말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600채 가까운 빌라를 소유한 자산가인 A씨. 그러나 방송을 통해 드러난 정체는 소위 ‘바지사장’이었다.

환가성이 낮은 빌라는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부동산’은 아니다. 그러나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등 현실적으로 서울에 아파트 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빌라 수요는 꾸준히 발생한다. 대부분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한다.

이 점을 노린 것이 변형된 ‘갭투자’다. 다만 기존의 갭투자와는 조금 다르다. 임대인이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고 빌라 명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방식은 이렇다. 건축주는 빌라를 빨리 팔아넘기기 위해 집 가격에 분양대행사, 부동산 중개업자, 임대사업자에게 줄 웃돈, 즉 리베이트(R)를 붙여 분양가격을 정한다. 세입자가 나타나면 웃리베이트가 붙은 가격과 동일하게 전세금 액수를 맞추고, 임대차계약이 이뤄진 뒤에야 이름만 빌려주는 집주인이 붙는다. A씨가 바로 이 ‘집주인’인 셈이다. 세입자가 지불한 전세보증금은 A씨와 같은 명의대여자(집주인)와 중개업자들이 나눠갖는다.

피해는 세입자가 전세계약기간 만료 후 집을 나가려 할 때 발생한다. 이미 보증금을 나눠가진 이후라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권설정 등 법이 임차인을 위해 보장하는 각종 보호장치를 갖췄어도 전세금사기 피해를 피할 방법은 없다. 집의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일해 설령 세입자가 경매에 넘기더라도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찰시 낙찰가액은 계속 줄어든다.

그런데 ‘38세금징수과’가 A씨를 찾고 있다. 서울시도 A씨에게 받아내야 할 체납세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A씨의 체납액은 2020년 1~10월 사이 빌라 7채를 매각하면서 발생한 취득세 3500만원이다. 세입자들이 입은 피해액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A씨 명의로 된 빌라 및 자동차 등에서 발생한 재산세 및 자동차세 등 체납액도 1145건 5억4100만원에 달한다. 이 체납액은 각 자치구가 징수해야 할 몫이다. A씨 소유 빌라 및 오피스텔은 서울지역 17개 자치구에 흩어져 있다. 서울시와 17개 자치구가 A씨로부터 받아야 할 총 체납액은 2월 기준 5억7600만원이다.

왜 이렇게 많은 체납액이 발생한 것일까. 2019년 방송 이후 A씨 명의의 빌라에서 지속적으로 경매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받아야 할 취득세 감면액 환수액이 발생했다. 임대사업자의 취득세 감면 조건부 의무임대기간이 완료되지 않는 ‘새 빌라’들이 경매를 통해 매각되고 있는 탓이다.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모습.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지방세특례제한법상 임대업자가 소형빌라 및 연립주택을 취득 후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지자체는 주택취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준다. 이때 임대사업자는 임대주택 등록일로부터 4~8년의 의무임대기간을 채워야 한다. 이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임대주택을 매각하면 지자체는 감면한 취득세를 환수해야 한다. 그런데 취득세 환수는커녕 A씨의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세금징수과는 “그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냥 잠적한 것이다.

세금징수과 관계자는 “A씨는 현재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 지하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소재를 현재까지 파악하지 못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월 말쯤 A씨의 집에 갔었지만 문이 잠긴 채 인기척도 없고 우편물도 쌓여있는 상태”라며 “A씨가 대표로 있는 업체 사무실도 현재는 문을 닫았다”고 했다. 세금징수과는 A씨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A씨가 있을법한 곳을 찾아다녔다.

세금징수과는 “끝까지 받아낸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A씨를 찾아낸다고 해서 체납액을 받아낼 뾰족한 수도 없다. A씨 명의 빌라를 압류해 경매에 부치더라도 공매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A씨가 갖고 있는 빌라의 매매가는 세입자들이 낸 전세보증금과 동일하다. 세금징수과의 말을 빌리자면 “10원 한 장도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통상 아무리 좋은 물건이 경매시장에 나와도 한 번에 낙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1~2회 이상의 유찰을 거쳐 낙찰된다. 입찰액의 70%만 건져도 잘한 경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 낙찰되더라도 A씨 명의 빌라의 제1순위자는 대부분 ‘주택도시보험공사’이거나 ‘세입자’다. 이들에게 낙찰액이 돌아간 이후 서울시에 돌아갈 돈은 ‘10원 한 장’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파악한 A씨 명의의 빌라는 서울, 인천, 경기도에 걸쳐 총 409채에 달한다. 2년 전보다 190채 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많다. 이 말은 곧 A씨의 체납액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38세금징수과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A씨 명의 빌라의 경매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감면받은 취득세 추징대상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금징수과의 전략은 ‘장기전’이다. 한 관계자는 “한 푼도 못 건질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감시하면서 건전한 물건이 나오면 즉시 징수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1일 A씨 소유의 빌라와 오피스텔 등 409건을 압류조치 했다.

세금징수과는 무엇보다도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임차인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냉장고를 넣어주겠다’, ‘에어컨도 넣어주겠다’ 등의 통상적이지 않은 호의를 보이며 계약을 유도하는 주택이 있다면 결정을 잠깐 멈추세요. 다른 중개업소를 많이 다녀보세요. 그 주택이 주변 시세에 비해 너무 많은 전세금을 요구했던 거라면 피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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