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눈돌리는 대기업, 뉴스페이스 시대 앞당긴다

2021. 2. 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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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500조원에 달하는 우주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민간 기업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주 산업에서 가치 사슬을 완성하기 위한 대기업·중견기업의 인수합병, 전략적 제휴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도 우주 개발에서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국내외에서 우주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관련 기업 주가도 상승세를 보인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우주 산업 진출을 꾀하는 곳은 한화이다. 한화의 항공 우주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월 13일 쎄트렉아이의 지분을 1090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쎄트렉아이는 우리별 1호 개발 경험을 갖고 있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이다. 소형 위성 제작 분야에서 영국 SSTL을 인수한 에어버스와 함께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한화는 쎄트렉아이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됐지만 경영은 현재 경영진이 그대로 맡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쎄트렉아이 인수가 국내 우주산업에 주는 의미는 자뭇 크다. 최정열 부산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시작인 우리별1호를 만든 주역들이 창업한 회사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아이콘 같은 회사를 한화가 인수하면서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의 우주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방위산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우주 시장의 주된 플레이어로 제대로 나서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50㎝급 해상도를 가진 쎄트렉아이의 차세대 관측위성 스페이스아이X가 우주상황을 가정한 진공챔버 안에서 시험 가동 중에 있다. 사진 쎄트렉아이


국내 대기업 우주 산업 진출 잇따라

한화는 태양광·수소에 이어 우주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만들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자회사인 한화시스템과 쎄트렉아이의 3각 편대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올해 10월 발사하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로켓엔진을 제작한다. 한화시스템은 위성 탑재체인 영상레이더(SAR), 전자광학·적외선(EO·IR) 등 구성품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6월 저궤도위성 안테나 사업자 페이저를 인수하고 12월엔 저궤도 위성 안테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카이메타에 약 33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 해 한미미사일 협정 개정으로 고체연료를 이용한 위성 발사도 가능해졌는데 한화시스템은 이런 고체로켓 엔진제작 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쎄트렉아이의 위성제작 기술을 확보하면서 한화는 땅에서 위성을 쏘아올리고 통신·정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벨류체인을 완성하게 된다.

한화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신년사에서 항공우주의 중요성을 밝혔던대로 한화는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여기에 발사대, 안테나 관련 업체도 인수하면서 여러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뉴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할 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군과 정부에서 수요가 많은 정찰용 위성과 민간 분야의 통신 위성으로 확대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면서 “도심형 항공(UAM)이나 자율비행 개인항공기(OPPAV)가 상용화되면 수요는 더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저궤도 위성 통신·인터넷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 2026년엔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스페이스X와 아마존, 영국의 원웹(OneWeb) 등이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의 선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선 기존 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화, 한국항공우주(KAI), LIG넥스원과 함께 새로 한컴그룹이 위성 시장에 진출했다. 한컴그룹은 지난해 9월 우주·드론 전문기업 인스페이스를 인수하면서 오피스 회사에서 블록체인, 모빌리티, 항공우주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제 ‘한컴인스페이스’가 된 인스페이스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출신의 최명진 대표가 설립한 기업으로 국내 위성 지상국 분야 1위 기업이다. 위성 지상국 구축과 운영, 인공지능 기반의 위성·드론 영상 분석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우주 탐사를 위한 시험용 달 궤도선 프로젝트(KPLO)의 지상국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드론 자동 이·착륙, 무선충전, 다중운영, 통신 데이터 수집·관제·분석 등 기술을 통합한 무인 자동화 시스템 ‘드론셋(DroneSAT)’을 개발해 드론 소프트웨어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각종 사고·재난 감지, 교통량·범죄 감지, 환경감시, 농업·건설·산업 분야 현장 관제 등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드론 쪽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인수였지만 위성 지상국과 위성 기반 영상 분석 등 인스페이스의 원래 강점도 계속 살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컴인스페이스는 지난 1월 말 네이버클라우드와 협업해 국내에서 처음 클라우드 기반 지상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위성이 보내는 데이터를 지상국이 수신하는데 그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비용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클라우드 기반 위성 지상국의 핵심이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항공우주 분야를 새로운 미래 사업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인스페이스가 우리와 합류한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우주 분야의 구체적인 사업 영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인스페이스가 독보적으로 쌓은 영역을 중심으로 중장기 계획을 세울 것이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술자들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뉴스페이스 시대 기대감에 주가도 상승세

뉴스페이스 시대의 상징이라 할 스페이스X가 지난해 11월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면서 민간 우주 수송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우주 관광과 우주 자원 채굴도 머지 않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우주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관련 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 전문 운용사인 아크인베스트가 지난 1월 14일 우주산업에 투자하는 ETF를 내놓겠다고 밝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크인베스트는 테슬라 등 파괴적인 혁신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크인베스트의 우주 ETF 편입 기대로 관련 업체의 주가가 한동안 급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버진갤럭틱(SPCE)의 주가는 관련 소식이 전해진 1월 14일 33.03달러에서 2월 12일 현재 54.53달러로 상승했다. 아직 상장된 우주 업체는 한정적이고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 등 민간 우주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도 비상장회사이다. 하지만 우주 ETF 출시를 계기로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하면서 우주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열풍이 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서 글로벌ETF를 담당하는 박승진 애널리스트는 “그간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분야와 여기서 파생하는 혁신산업이 각광받았는데 사실 그 이후 차세대 먹거리로 뭘 가져갈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통신과 위성 인터넷 서비스 등 우주항공 산업 기술의 발전은 여러 분야에 응용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우주 산업이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으면서 국내 우주 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항공우주(KAI)가 중대형 인공위성을, 한화시스템는 적외선과 레이더 탑재체를, LIG넥스원은 다목적 실용위성 6호의 탑재체를 개발하고 있다. 소형 로켓 발사체를 제작하는 이노스페이스와 페리지항공우주, 초소형 위성 제작에 강한 나노스페이스와 위성 지상국 서비스와 영상 분석 등에 특화된 컨텍 등 국내 우주 스타트업도 대규모 투자를 받아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민간자본이 본격적으로 우주에 관심을 갖고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컴인스페이스 인스테이션 플랫폼(InStation Platform). 한컴그룹 제공
현재 3000억달러 후반 수준인 우주 산업의 수익 규모는 향후 20년 내에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우주산업을 차세대 혁신 산업으로 인식해 투자를 확대하고 우리나라 역시 6개의 미래유망신기술 중 하나로 선정해 투자 규모를 늘려가는 이유이다. 특히 위성을 이용한 통신 서비스의 성장성이 높게 평가받는다. 위성을 이용하면 지구 전역으로 데이터 플랫폼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40년에는 인터넷 인프라에 우주 기반 기술이 활용되는 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애널리스트는 “4차산업 혁명으로 데이터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우주선 발사의 빈도가 계속 늘고 있다”면서 “우주에서 광물을 캐와서 자원으로 쓸 수 있는 것까지 확장성을 갖고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기대감도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는 대기업의 우주산업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화나 한컴보다 더 규모있는 기업의 진출도 고대하고 있다. 최정열 교수는 “우주 분야에서는 모두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만큼 기왕이면 자본금을 많이 갖고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우주 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수요처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정열 교수는 “현실적으로 현재 우주에서 가장 쓸모있는 것이 위성인데 여전히 위성을 쓰는 곳은 정부 주요 부처일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다양한 분야의 위성 수요를 발굴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성이 많이 발사될수록 위성 제작과 발사체 제작, 지상국 서비스 등 위성을 중심으로 우주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성을 필요로 하는 기업도 많아져야 한다. 최 교수는 통신과 방송, 인터넷 분야 기업들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 혹은 적어도 아시아로 진출해 사업을 벌여야 우주 산업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봤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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