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서 '처칠 흉상' 치운 바이든.. 미·영관계 어디로?

김태훈 2021. 2.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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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갖다 놓은 처칠 흉상, 바이든이 철거
WSJ "미·영 관계, 예전보다 덜 특수해질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흉상은 미·영의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받아들여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만 해도 집무실 한 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했던 처칠 흉상이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퇴출’되면서 미·영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유럽 대륙에서 멀어진 영국 입장에선 미국과의 특수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만큼 미국을 향한 ‘구애’가 한층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트럼프 갖다놓은 처칠 흉상, 바이든이 철거

13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등극한 뒤 여러 변화가 생겨났다. 대통령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백악관 집무실의 여러 장식물들 가운데 처칠 흉상이 철거된 것도 그중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은 처칠 대신 미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킹 목사의 흉상을 들여놓았다.

백악관의 처칠 흉상이 미·영 관계와 맞물려 눈길을 끌기 시작한 건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정부가 2000년대 초 미·영 우호의 상징으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선물한 처칠 흉상을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 뒀는데, 후임자인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를 딴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미 정가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 출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처칠 흉상을 집무실에 두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서 ‘미·영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현재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시장도 이를 강하게 성토했다.
미국 백악관이 보관 중인 처칠 흉상.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치운 처칠 흉상을 도로 백악관 집무실에 원위치시켰다. 이는 오바마 정부 시절의 모든 것을 뒤엎으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이끈 처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 미국을 이끄는 나와 비슷하다”고 말한 점에서 알 수 있듯 처칠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남다르다는 점도 일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WSJ “미·영 관계, 예전보다 덜 특수해질 것”

처칠 흉상을 백악관 집무실 밖으로 내보낸 바이든 대통령의 선택을 두고서 ‘미·영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12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영국의 우호관계가 (바이든 대통령 임기 첫 해인) 2021년부터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WSJ에 따르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가 실질적으로 발효돼 미국이 영국을 예전보다 덜 찾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 정부는 그간 EU 법안부터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거의 주 단위로 영국 정부와 상의해왔다. 그런데 영국과 EU를 잇던 끈이 끊어지면서 이제 미국은 영국을 통해 독일, 프랑스, EU 집행위원회에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어졌다. 킴 대럭 전 주미 영국대사는 WSJ에 “영국이 EU 논의에서 제외되면서 미국이 영국에 부여하는 가치 중 핵심적 일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인의 항독 의지를 드높이고 미·영 동맹을 성사시켜 종국에는 연합국의 전쟁 승리를 이끌어냈다. 오늘날 미·영 양국에서 두 나라의 ‘특수관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두 나라를 둘러싼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끝에 WSJ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예전보다 조금 덜 특수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처칠이 2차대전 때부터 80년가량 지속돼 온 미·영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영국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과거 영국은 미·영 관계가 틀어질 조짐을 보일 때마다 처칠을 소환하곤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간에 긴장감이 감돌던 201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칠이 쓴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 초판 축약본을 선물했다.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도 처칠가 타자기로 친 ‘대서양 헌장’ 초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로 건넸다. 미국을 향해 ‘처칠을 기억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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