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일까 노동절일까?
'근로'에 일제강점기·반공주의 잔재 주장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
노동으로 바뀌면 행정력 낭비도 우려돼
휴일이 귀한 4월을 마무리하고 5월에 맞는 첫날인 ‘근로자의 날'. 이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는 유급휴일로 심지어 특별법까지 있다. 최근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제강점기 때와 산업화시대에 ‘근로’라는 말이 채택됐다는 논리다. 근로와 노동이라는 단어에서도 이념 논쟁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겸 한국노총 금융노조 위원장, 안호영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노동절 명칭회복 입법 추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상징적인 실천은 바로 2,000만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로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전부 개정안은 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노동절’로 바꾸는 내용이다.
결국 ‘근로냐 노동이냐'는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지방의회에서는 그동안 조례에 있는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는 조례개정안이 대거 발의됐다. 예를 들어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비례)이 발의해 지난 2019년 2월 수정가결된 ‘조례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안’도 조례의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근로’에 일제강점기와 잔재가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근로와 노동 모두 표준어다.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뜻이고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함’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근로’라는 단어는 근로정신대 등 일제가 한국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단체에 사용됐다.
‘근로’라는 단어에 군사독재·반공주의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주장도 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1963년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정부 때다. 더구나 이 당시 근로자의 날은 3월 10일이었다.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설립일이다. 5월 1일은 1886년 미국 노동자 대투쟁 기념일로 당시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연휴로 기념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의적으로 ‘근로’라는 말을 ‘노동’ 대신 사용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근로자의 날은 문민정부 때인 1994년에서야 5월 1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근로라는 말을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과도하게 이념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근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세종실록에 세종대왕이 경원절제사 이징옥에게 자헌이라는 정2품 벼슬을 내리는데 이에 대해 사관은 “징옥이 오래 변방에 있었으므로 임금이 그 근로를 생각해 정부에 의논하여 가선(종2품)에서 뛰어올려 자헌을 준 것”이라고 적었다. 말 그대로 ‘열심히 일했으니(근로) 공을 준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근로라는 단어는 태조실록부터 순종실록까지 빠짐없이 등장한다. 딱 하나 인종실록에서만 찾을 수 없는데 재위기간이 짧은 탓으로 보인다.
이미 근로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가 초래될 것으로도 보인다. 당장 헌법 32조의 근로의 권리도 그렇고 헌법 33조(노동 3권)도 ‘근로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 노동법도 근로기준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근로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조례안에 대해 “조례에서 관계법령의 용어와 달리 사용하는 경우 다른 개념으로 오인하거나 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법령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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