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팔 때마다 '최고·최대·최초' 경신..경남서 옛 가야유물 쏟아진다
토목공사 도중 발굴되는 것 포함하면 훨씬 많아
내년 7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여부 결정
2018년 국도5호선 거제-마산 구간 건설공사 도중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공사현장에서 3~5세기 조성된 무덤 840여기 등 대규모 가야 유적이 나왔다. 가야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아라가야 계통의 통모양굽다리접시, 불꽃무늬토기 등 다양한 토기와 망치, 덩이쇠, 둥근고리큰칼, 비늘갑옷, 투구 등 2500여점의 유물도 출토됐다. 특히 가야고분에서는 처음으로 고대 항해용 선박을 형상화한 배모양토기가 나와 학계를 흥분시켰다. 국도5호선 거제-마산 구간 건설공사의 창원 지역 공사는 4일 끝났는데, 창원시는 현동고분군 일부를 복원하고 현장에 유물전시관을 세울 계획이다.
그런데 가야 최대 고분군이라는 현동고분군 기록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서 깨졌다.
지난해 경남 창원시 제2안민터널 건설 도중 터널 진출입로 예정지에서 무덤 1000여기 등 대규모 가야 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이 유적 발굴작업은 내년 4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아직 생활유적 부분은 발굴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토기·철기·장신구 등 유물 5500여점이 출토됐다.
유적을 발굴하는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4세기 전반부터 300년가량 이어진 유적인데, 전혀 도굴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발굴되고 있다. 특히 가야가 ‘철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집게·도끼·화살촉·큰칼 등 철기 유물이 1800여점이나 나왔다”고 밝혔다.
옛 가야의 중심지역인 경남에선 최근 “파면 나온다”고 할 만큼 곳곳에서 가야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게다가 발굴할 때마다 ‘최고’ ‘최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문화재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 쏟아져나온다.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는 9일 “경남 도내에서 학술조사 목적의 가야유적 발굴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2016년까지는 연간 10건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7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 3년 동안은 2018년 30곳 36건, 2019년 48곳 57건, 2020년 42곳 48건 등 120곳 141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규모 토목공사 도중 발굴돼 조사하는 구제조사까지 포함하면, 현재 경남에서 조사 중인 가야유적은 훨씬 늘어난다.
발굴조사가 진행되는 지역은 경남 18개 시·군 전체에 고루 퍼져있다. 경남 전역이 옛 가야의 영역이었으나, 가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뜻이다.
경남에서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3년 ‘가야고분군’(Gaya Tumuli)의 세계유산 등재추진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가야고분군’은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합천군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등 경남 5곳과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전북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등 7개 고분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들 7개 고분군은 가야 정치체제의 각 중심지에 위치하고, 가야 문명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며, 가야 문명의 사회구조를 반영한 묘제와 부장유물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야고분군’은 지난해 9월10일 국내 심의 최종단계를 통과해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최종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오는 9월 현지실사를 하고, 이후 토론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판가름난다.
우리 정부는 2017년 7월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2018년부터 관련 예산을 집행해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지원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야고분군’이 경남·경북·전북에 걸쳐있어 지난해 6월엔 ‘초광역협력 가야문화권 조성’ 기본계획도 마련됐다. 이 작업은 단순히 ‘가야고분군’ 정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야사 규명과 확립, 가야유산의 합리적 보존과 관리, 가야 역사자원 활용과 가치창출 등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덕택에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2017년부터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역사적 가치규명이 시급한 가야유적 조사를 지원하는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이 2019년 시작되면서 경남 도내 가야유적 조사건수가 부쩍 늘어났다. 최근 3년 동안 학술조사 목적으로 발굴한 120곳 가운데 77곳이 비지정 유적이다.
경남 고성군의 대표적 고대 성곽인 만림산 토성이 5세기 소가야 전성기에 축조된 토성이라는 사실이 지난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는데, 이 조사는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 덕택에 이뤄졌다. 경남 통영시 팔천곡 고분군은 통영지역의 유일한 높다란 모양의 고분인데, 이 역시 지난해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 덕택에 발굴조사를 해서 소가야 고분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이곳에선 금으로 만든 가는고리귀걸이, 굽은옥·대롱옥·유리구슬 등으로 만든 목걸이, 철제 큰칼,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경남 김해 유하리 유적에선 지난해 건물지 7동이 발굴됐다. 역시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으로 발굴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유물이 나왔는데, 건물지 중앙의 넓은 나무판재 흔적 위에서 금관가야 토기의 대표격인 아가리가 밖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15점이 5점씩 세줄로 나란히 눕혀진 채 출토됐다. 무덤이 아닌 생활유적에선 처음 확인된 것으로, 관련 학계는 이를 통해 제사 행위 등 특수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는 “경남의 가야유적 가운데 95% 이상이 비지정 유적이다. 비지정 유적이라고 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중요성을 규명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가야의 실체를 더욱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활발해지면서 가야유물의 가치도 뒤늦게나마 인정받기 시작했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등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3점은 지난해 10월8일 보물 제2081~2083호로 지정됐다. 김해 대성동 88호분에서 출토된 금동허리띠는 지난해 11월19일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예고됐다. 창원시는 현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수습해 지난해 10월 창원시립 마산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 ‘가야의 또 다른 항구, 현동’을 열기도 했다.
김수환 경남도 학예연구사는 “가야유적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시작됐는데, 당시엔 왕릉 등 최고지배층 유적 중심으로 조사했다. 해방 이후에도 사실상 일본학자들의 연구 방식과 결과를 그대로 이어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에만 주목했다”며 “가야유적은 신라·백제에 견줘 가치를 규명할 기회가 적었는데, 비지정 가야유적은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야 가야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기초조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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