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만 오면 삭감되는 '단골 예산' 1위의 비밀
■ 국회 삭감 예산 단골 1위, '국고채 이자상환금'
올해 정부 예산안에서 국회가 가장 많이 삭감한 항목 1위, ' 국고채 이자상환금'입니다. 정부는 세수가 부족할 때 국채를 발행하게 되는데, 여기 들어가는 이자를 따로 마련해두는 예산입니다. 즉, 국채 금리 예측치가 높을수록 예산 규모는 커지는 건데, 말 그대로 '지출 예측 비용'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년도 국고채 이자상환금' 예산은 21조 1천억 원입니다. 올해 이자 비용이 이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 것인데, 2.4%의 금리를 가정해 이 비용을 책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실제 발행된 국채 금리가 1%대였고 최근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기재부의 이 금리 예측치는 과다하게 여겨집니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자체적으로 이자 상환 규모를 산출해본 뒤 "8천억~1조 5천억이 과다하게 편성돼있다"며 적정 비용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이자 비용 규모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국고채 이자상환금 21조 1천억에서 9천억 원을 깎아 최종 액을 확정했습니다.
■ 기획재정부는 금리 계산을 잘못했을까?
기재부가 예측해서 제출한 금액보다 1조에 가까운 이자 비용이 삭감된 건데, 기재부에서 금리 계산을 잘못했던 걸까요? 최근 10년간의 국회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국회 심사를 거쳐 확정된 예산을 살펴봤습니다. 기재부의 금리 예측치는 전년도 발행금리보다 늘 높았고, 그런 연유로 국회에서는 해마다 1천9백억에서 1조 6천억 원의 이자 비용이 삭감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회의원들이 늘려달라고 요구한 지역구 철도·도로 신설 등에 들어가는 SOC 예산은 4천억에서 1조 3천억 원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증액됐습니다.
10년간 국회에서 가장 많이 감액된 분야는 '국고채 이자상환금', 가장 많이 증액된 분야는 'SOC 예산'이었습니다. 정부는 이자 비용을 과장해서 제출하고 국회는 단순히 통계적인 숫자를 삭감한 뒤에 상당액을 '지역구 예산'으로 나누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 " 형식적 숫자 감액, 국회 증액 규모 줄게 하는 '착시효과'"
'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대표는 "의원들이 요구한 지역구 사업 등 실질적으로 지출이 필요한 금액을 국회에서 3조, 4조를 늘리더라도, 기재부의 이자 예측 비용을 수천억 줄이면 총예산 증액 규모가 적어 보이는 '착시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형식적인 숫자 5천억을 삭감하면, 국회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5천억 원만큼의 추가 증액 여력이 생긴다는 이야깁니다.
큰 문제는, 국민도, 대다수 국회의원들도, 예산안을 짜는 공무원들도 수천억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정부의 이자 비용을 덩어리째 '칼질'하는 이 과정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국회와 예산 당국이 이 '국고채 이자상환금'을 어떻게 최종적으로 산정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야 간사와 기재부 관계자만이 참여하는 막판 비공식 협의체인 '소(小) 소위'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회의록에는 '이자가 과다하게 책정됐다', '작년에도 다 못 쓴 이자 비용'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매해 반복되지만, 딱 거기까집니다.
국회 예산안을 사실상 확정하는 '소소위'는 공개도 되지 않고 기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 비용 산정 근거도,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소소위'에 참여했던 당사자 외에는 확인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 이 밀실합의체에서 국회도 정부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총액'을 맞추는 과정에 집중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을 늘린 뒤 국고채 이자 감액 규모를 결정해 '예산 총액'을 맞춘다는 의심은 '소소위'가 계속되는 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예산 밀실 합의 '소(小)소위'.... '눈속임 예산'은 계속된다
21대 국회에서 이 '소소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고 회의록도 공개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국고채 이자상환금'을 "정부가 숨겨온다"고 표현했습니다.
김 의원은 "시간이 촉박한 막판 심사에서 지역구 사업에 들어갈 비용을 감액시키자고 하면 합의가 어려운데 이때 등장하는 게 '국고채 이자 비용'이다. 이자는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데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없다. 말 그대로 '예측 금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금리를 높게 잡아놨다가 2%p만 깎아도 조 단위의 돈이 왔다 갔다 한다. 정부 측도 '이 부분 깎을게요'라고 내놓는 건 이자 비용일 때가 대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예산 심사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밀실 합의를 없애거나 기록이라도 남겨 다음에 공개해야 '눈속임' 예산이 사라진다고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회 차원에서 논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법안을 발의했었던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스스로 불편한 법을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고백했습니다.
김해영 前 민주당 의원은 "'소소위'라는 밀실 합의체에서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과정이 공개되기를 바라는 의원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밀실 심사를 계속한다면 국민 세금을 필요한 데에 쓰고 있다는 신뢰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상진 前 국민의힘 의원도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부도 국회도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이견이 없이 좋게 넘어가기 위해 만든 협의 과정은 사라져야만 한다. 하지만 국회 자체에만 맡겨서는 쉽지 않고 국민의 관심과 눈총이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예산 심사 짬짜미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여당인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법' 개정 과정에서 소소위 회의록을 남기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이 규정은 슬그머니 빠졌습니다. 수 백조에 이르는 나라 살림 비용을 확정 지으면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비공개, 비공식 논의가 계속되는 한 '눈속임 예산'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김빛이라 기자 (gl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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