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램지어' 낳은 역사왜곡, 뿌리는?
미국 하버드 법대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공인된 매춘부”라고 규정한 논문을 내놓고 비판이 거세지자 일본인 학자들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놀랄만큼 광범위한 원자료에 근거한 탁월한 학술적 결과물”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램지어 교수가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장학생이며, 일본인 학자들이 그를 응원하고 나선 것에서 일본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이 다시 확인된다.
어째서 일본은 과거에 솔직하지 못하며 왜곡까지 일삼는 걸까, 침략행위로 인한 엄청난 피해에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 걸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두고 이런 의문을 떠올려봄 직도 하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최근 발간한 ‘동아시아역사 입문’에 실린 숙명여대 박진우 교수의 글 ‘현대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답이 될 만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청일전쟁은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로 규정됐고, 러일전쟁의 결과는 아시아 이웃 국가에 대한 우월감, 멸시관을 한층 증폭시켰다. 침략전쟁, 식민지 지배에 따른 온갖 가해 행위의 부정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1945년 8월 연합군에 대한 패배를 한사코 ‘종전’이라고 표현한 데서도 이런 인식을 읽을 수 있다. 패전이나 항복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은 일왕의 ‘종전 조서’에는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을 부정하고 ‘자위전쟁’이라고 강변하는 왜곡된 역사 인식의 원형”이 담겨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최고사령관총사령부(GHQ)는 국가주의 교육 금지, 재벌 해체, 정치적 자유 등에 대한 제한 철폐 등의 개혁 조치를 실시하고, 전범 처단에 나섰다. 하지만 GHQ의 정책은 1948년을 경계로 완전히 바뀐다. 이즈음 한반도의 분단이 기정사실화되고 ,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일본은 ‘반공의 방파제’로 삼기 위한 ‘역코스 정책’(Reverse course) 취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했던 GHQ는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다. 또 수감되어 있던 A급 전범들을 감형, 석방시켜 공직 복귀를 허용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로 1958∼1960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가 이렇게 풀러난 대표적인 A급 전범이다.
박 교수는 “일본을 동아시아 정책의 중요한 동맹국으로 부활시킨 미국의 역할은 결과적으로 근린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침략 책임을 은폐하는 동시에 아시아에 대한 우월감을 구조적으로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가 되면 교과서 왜곡을 대표로 하는 역사수정주의가 전면에 등장한다. 역사수정주의가 이전의 내셔널리즘과 다른 것은 “포퓰리즘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에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발맞추어 일본 정부도 ‘히노마루’, ‘기미가요’를 국기, 국가로 지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특히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 난징대학살, 731부대다. “일본인의 민족적 긍지와 명예를 강조하며 국민통합을 강화하고 대국화를 지향하는” 역사수정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이 침략 국가, 나아가 성범죄 국가로 지목된다는 것은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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