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佛 핵잠수함이 남중국해로 간 까닭은

김태훈 기자 2021. 2. 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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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핵잠수함이 남중국해에 진입했습니다. 미국, 중국, 동남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갈등의 바다에 프랑스도 뛰어든 겁니다. 잠수함은 모름지기 은밀한 무기인데 프랑스 국방장관이 대놓고 트위터에 프랑스 핵잠수함의 남중국해 작전을 공개했습니다. 프랑스 핵잠수함의 남중국해 작전 자체만으로도 함의가 큰데 우리나라도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과거 동남아에 식민지를 경영했지만, 현재의 동남아에는 별다른 연고가 없습니다. 누벨칼레도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등 태평양 해외 영토도 남중국해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프랑스 핵잠수함의 남중국해 작전은 순수하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며 추구하는 항행의 자유를 지원하는 차원입니다. 영국이 최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를 동아시아로 보내겠다고 밝힌 가운데 프랑스가 한발 앞서 힘을 보탠 형국입니다.

군사 강대국들의 막강 무기가 원정하는 목적은 겉으로는 무력 시위입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무기 마케팅의 일환일 때가 많습니다. 프랑스 잠수함이 동남아시아 바다를 휘저으며 위력과 성능을 뽐내면 구매를 희망하는 동남아 국가들은 천군만마를 얻는 격입니다. 인도네시아가 그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대우조선해양과 잠수함 3척 계약서에 사인해놓고 2년이 다 되도록 계약금을 한 푼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와 손잡을 궁리를 하고 있는데 프랑스 핵잠수함이 가까운 곳으로 응원 왔으니 버선발로 뛰어나갈 일입니다.

프랑스 핵잠수함의 남중국해 작전을 알린 플로랑스 팔르리 프랑스 국방장관의 트위터


● 佛 잠수함 에메로데의 남중국해 작전과 장관의 공개

플로랑스 팔르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지난 9일 트위터를 통해 핵잠수함인 SNA에메로데가 지원함 BSAM세인과 함께 인도양으로부터 1만 5천km를 항해해 남중국해에 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에메로데가 작전한 남중국해의 해역은 중국, 타이완,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갈등의 바다입니다. 석유와 가스가 대량 매장돼 있어서 중국이 몹시 탐을 내고 있고, 미국의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중국과 충돌하고 있는 곳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종종 밝힌 바 있고, 2019년 4월에는 타이완해협으로 호위함으로 보내 중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 핵잠수함을 파견했으니 항행의 자유에 대한 지지의 강도를 높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팔르리 장관은 이번 작전에 대해 "이 지역(남중국해)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다", "우리가 어떤 바다를 항해하든 유효한 유일의 규칙은 국제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친선 방문도 아니고 언제 충돌해도 이상하지 않을 남중국해에서 벌인 잠수함의 은밀한 작전을 프랑스 국방장관은 광고하듯 공개했습니다. 잠수함의 작전 중 사진도 첨부했습니다. 갈등의 바다에 뛰어들겠다는 공개 선언 같습니다.

프랑스 핵잠수함 에메로데가 지원함 세인과 함께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팔르리 佛 국방장관 트위터)


● 한·인니 잠수함 계약은 어떻게 되나

에메로데는 프랑스 루비급 4번 함입니다. 1988년 취역한 제법 오래된 잠수함입니다. 탄도미사일의 전략원잠(SSBN)은 아니고, 중어뢰와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공격원잠(SSN)입니다. 배수량이 3천 톤 안팎으로 크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루비급을 대체할 차세대 바라쿠다급 공격원잠을 개발했습니다.

에메로데가 남중국해에 홀연히 떠올라 중국을 견제하는 위용을 뽐내면 프랑스의 정부와 방산기업에게는 최고의 잠수함 마케팅입니다. 최신예 잠수함은 아니지만 대중국 해군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프랑스와 접촉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에메로데의 남중국해 활약을 적극 지지할 만합니다. 인도네시아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이기도 한 수비안토 프라보워 국방장관은 수차례 프랑스로 건너가서 파를리 장관을 만나 두 나라의 방산협력을 깊이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방사청의 방문 요청에는 꿈쩍도 안 하지만 프랑스에는 자주 갑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메로데의 남중국해 작전은 프랑스의 잠수함 마케팅"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프랑스 잠수함에 대한 좋은 여론을 일으키기 딱 좋은 수단이다", "방사청과 대우조선해양은 잔뜩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4월 대우조선해양과 잠수함 3척 건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해 10월 프라보워 국방장관 취임 이후 일이 꼬였습니다. 1천600억 원 계약금을 현재까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1년 10개월째 계약 발효도, 잠수함 건조도 멈췄습니다.

에메로데의 남중국해 작전으로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계산속은 한국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청장의 내부 승진으로 새바람이 불고 있는 방사청의 심기일전 역량을 기대해보겠습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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