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어떻게 가족을 파괴했나

이효상 기자 2021. 2. 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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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코로나19를 두고 “정말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거리두기’를 강요한데다, 일단 누군가 감염되면 그 주변으로 비극의 씨앗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주변인이 받는 피해는 더 컸다.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 코로나19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한 교회에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에 장례식 인원을 제한했다. 참가자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장례를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일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47만9408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미국에서는 가족 간에 바이러스가 퍼져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가족들은 확진자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때로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국 텍사스주 엘 파소에 사는 보니 소리아 나헤라는 코로나19로 6명의 가족을 잃었다. 지난해 5월 어머니가 가족 중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비극이 시작됐다. 일주일만에 어머니는 사망했고, 그 사이 아버지가 감염됐다. 나헤라는 감염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다. 어머니와는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던 아버지 역시 3주만에 숨을 거뒀다. 나헤라는 두 사람을 함께 묻었다.

그 사이 그 역시 코로나19에 걸렸다. 그는 ABC 뉴스에 “몹시 아팠다. 내가 겪은 고통을 설명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나헤라는 다행히 회복에 성공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그렇지 못했다. 고모와 조카가 사망하고 또 다른 고모와 삼촌도 잇달아 사망했다. 그는 “그들은 모두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식료품점에 가고 병원에 가는 정도의 꼭 필요한 일들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울수록 빠르게 퍼져가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나헤라의 가족은 지난해 연휴 기간 가족 모임을 모두 취소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지인들이 생일 파티나 베이비샤워(산모의 출산을 앞두고 신생아에게 줄 선물을 전달하는 파티)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 입장이 되고 싶지 않다면 (파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남은 가족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시카고에 사는 조 브루노는 지난해 연말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다.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두고 어머니와 누나가 브루노의 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 됐다. 브루노의 누나는 미용실에서 일했는데 당시 확진자와 접촉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사나흘간 자가격리 중이었다. 브루노가 ‘이발을 해야 한다’고 하자, 누나는 음성 판정을 받았으니 자신이 브루노의 집에 방문해 머리를 다음어 주겠다고 했다. 누나와 함께 어머니가 집을 방문했고 세 사람은 간단한 포옹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창문을 열어 둔 채 마스크를 쓰고 40~45분간 그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날 저녁 누나는 코로나19 증상을 보였고, 3일 뒤에는 브루노 역시 증상을 느꼈다. 머잖아 남동생과 누나의 남편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나이가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며칠간 코로나19와 싸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차례로 숨을 거뒀다. 59년의 결혼생활을 함께 했던 부부는 마지막 열흘간은 각각 격리돼 얼굴 조차 보지 못했다. 조 브루노는 ABC에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이 바이러스는 무자비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사람을 공격한다”며 “만약 내가 어머니와 40분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도 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몰랐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고도 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 슈퍼볼이 열린 플로리다주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관중석에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위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가족이 모이는 연휴기간은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이어지는 주요 분기점이 됐다. 뉴욕타임즈의 통계를 보면 줄곧 10만명대를 유지하던 미국의 일일 신규확진자 수는 추수감사절 직후인 11월27일 처음으로 20만명대를 넘어섰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초까지 이어진 연휴 이후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리타에서도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한 데 모였던 사라 메르카단테의 가족이 참상을 겪었다. 사라를 제외한 가족들이 함께 연휴를 보냈는데, 연휴 직후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사라의 오빠 제임스(55)와 조지(51)는 지난달 초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숨을 거뒀고, 2주 뒤에는 80대 삼촌의 부고가 전해졌다.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는 지역 방송인 KTLA에 “바이러스는 아마 가족 모임에서 퍼졌을 것”이라며 “일단 진행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병원에서 함께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도 없다. 그것은 잔인하고, 사악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벌써 1년 넘게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는 지난해 2월 춘제를 하루 앞두고 일가족이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가 55세 남성 창카이와 그의 부모, 누나가 목숨을 잃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창카이는 유서에 “양친의 병간호를 한 지 며칠 만에 바이러스는 무정하게도 나와 아내의 몸을 삼켰다”며 “아버지를 모시고 여러 병원에 갔지만 하나같이 병상이 없어 환자를 못 받는다고 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병상을 구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전염력이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주에서는 일가족 5명이 단숨에 목숨을 잃었다. ‘로볼라’라고 불리는 결혼지참금을 협상하기 위해 한 데 모였다가 순식간에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17살 딸과 4살 쌍둥이 아들을 둔 여성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도 가족에게 숨겼다가 일가족 6명이 모두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확진 판정을 받은지 한 달여만에 여성이 세상을 떠났고, 그 이튿날 남편이 숨졌다. 지난달 27일 4살 쌍둥이도 숨을 거뒀는데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은지 40여일 만이었다.

CNN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가족 구성원 중 최소 한 사람 이상을 잃은 가정이 45만 가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지난 10월 엄마와 외할아버지를 잃은 린제이 우튼은 CNN에 “자신의 건강에 자신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걱정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쓰고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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