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소유에서 얻은 행복은 솜사탕처럼 금방 사라진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2. 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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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가진 사람들이 남에게 베풀 줄 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 반대의 현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진 사람들이 더 한다는 말이나 지독한 구두쇠 캐릭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아무리 재산이 쌓여도 베풀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특히 저소득층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부유층 사람들이 저소득층에게 가야 할 지원금을 빼먹는 등의 일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한다. 한 번 가지면 그 다음에는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지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인간에게 만족이란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부유해지는 만큼 '적어도 이런 집과 이런 차를 가져야 해' 같은 욕심이나 기대치도 비슷하거나 또는 더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부와 행복 사이에 상관이 존재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쾌락의 수레바퀴(hedonic treadmill)' 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참고로 생존에 있어 필요한 수준의 부는 사람들의 행복 수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다만 재력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재력의 증가에 따라 함께 늘어나는 행복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사람들에게 없던 돈을 쥐어줘서 부유한 느낌을 맛보게 하면 같은 초코렛도 ‘덜’ 맛있게 느낀다는 발견도 있었다. 부유함을 느끼는 것이 생리학적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음식도 아무 기대 없이 먹었을 때보다 많이 기대하고 먹었을 때 맛이 덜 하듯 경험에 대한 기대치와 만족도가 반비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최근 한 연구에서도 많이 가질수록 기대수준이 채워지기 보다 더 높아지기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퀸즈대 연구진은 78개국 15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돈을 아주 많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실험실에서 참가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에 가서 부유층으로 살거나 또는 저소득층으로 사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했다. 부유한 느낌이나 가난한 느낌을 증폭시키기 위해 부유층 그룹에게는 집과 차, 여행 등을 선택하라고 하면서 호화로운 선택지들만 선택하도록 했고 가난한 그룹에는 소박한 선택지들만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어떤 조건의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지 살펴본 결과 이번에도 부의 기쁨을 느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물욕이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물질이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 “재산 수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같은 생각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자신이 잘 하고 두드러지는 영역일수록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농구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사람은 농구선수를 꿈꾸고 그림을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 사람은 화가를 꿈꾸곤 한다. 재물이 많을수록 재물로 자신을 과시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또 배고픔 같이 즐거움을 늘리기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채워야 하는 욕구는 '적정 선'이라는 것이 있지만(배가 적당히 차길 바라지 배가 터지길 바라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쾌락의 경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적당한 선'을 넘었다는 생리적 또는 정신적 알람이 켜지지 않는 욕구인만큼, 이따금씩 불필요한 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예컨대 내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터넷 쇼핑을 하는 버릇이 있다. 살 때는 정말 필요해 보이고 저것만 가지면 나의 삶이 한 단계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느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택배 박스를 뜯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몇 번 쓰지도 않고 내팽개쳐진 물건만 잔뜩 쌓인다. 박스 뜯는 기쁨은 1분이 채 안 되지만 물건이 늘어나는 만큼 나의 공간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후회는 오래 간다.

이렇게 소유가 가져다 주는 기쁨은 대체로 단편적이고 솜사탕 같이 금방 사라지지만, 누군가를 돕거나 뜻 깊은 경험을 하는 등 의미 있는 일을 했을 때의 기쁨은 더 오래간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택배 박스와 안의 내용물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의미 있는 경험은 내 삶,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전자가 솜사탕이라면 후자는 영구적인 솜사탕 또는 영원한 솜사탕 제조기 같은 느낌이랄까?

여느 때보다 힘든 명절이다. 그만큼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사람들 또는 낯선 이들과, (화상이나 목소리로) 함께 또는 혼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마음만이라도 솜사탕이길 바래본다.

※참고자료
-Wang, Z., Jetten, J., & Steffens, N. K. (2020). The more you have, the more you want? Higher social class predicts a greater desire for wealth and statu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50, 360-37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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