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백신 접종' 스가의 승부수, 돌발 변수에 난항
'밀실 지명' 후임 선정 대외 이미지 악화 요인
화이자 백신 도착·의료진 접종 시기 앞당겨
안정적 백신 공급·의료진 확보 등 과제 산적
도쿄올림픽 개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을 난국에서 구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취임한 무파벌·비세습 총리에 대한 기대가 지도력 부재로 인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1월 긴급사태선언 후 코로나19 신규 감염자가 다소 줄면서 내각 지지율의 급락세는 잠시 멈춰섰다. 긴급사태선언을 1개월(다음달 7일까지) 연장한 배경에는 이달 중순 시작하는 백신 접종과 다음달 10일 올림픽 개최 여부를 결정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있다. 코로나19 수습과 백신 접종, 올림픽 개최 결정 등으로 지지율 반등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지만 올림픽 개최 결정과 백신 접종 시작 전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잇따르고 있다.
'모리 사퇴'로 무파벌 총리 한계 드러내
전세계적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 여부조차 안갯속인 도쿄올림픽은 '여성 비하' 발언을 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사퇴라는 암초를 만났다.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말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시대착오적 발언 이후 11일까지 자원봉사자들이 740명이 사퇴했고 이미지 손실을 우려한 국내외 후원사들의 반발까지 거세지면서 12일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문제 발언 이후 9일 만이다.
그는 발언 다음날 사과했지만 비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과로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을 밝힌 IOC가 9일 "완전히 부적절하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한 계기였다.
모리 위원장에 대한 분위기가 악화하자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와 집권 자민당도 당황했다. 총리 출신이자 당내 최대계파(호소다파) 수장이이었던 모리 위원장에게 사임을 권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 평등을 둘러싼 일본의 이미지는 계속 추락했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는 국회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총리에게 (모리 위원장의 거취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여왔다. 당내 최대 파벌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원로 거취 결정에 눈치를 봐야 하는 무파벌 총리의 한계만 드러낸 꼴이었다. 모리 위원장 사퇴 이후 스가 총리에게도 타격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임 선정을 둘러싼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모리 위원장은 11일 가와부치 사부로(川淵三郞)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을 만나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가와부치 전 회장도 이를 수락했다. 가와부치 전 회장의 낙점에 대해 스가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개최도시인 도쿄도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도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스가 총리는 "여성이나 젊은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불명예 퇴임하는 위원장이 후임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밀실 지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마저도 백지화했다. 다음달 이후 올림픽 개최 여부 등에 앞서 대외 이미지 제고를 감안한 총리와 총리관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리가 이번 논란에서도 오락가락한 것은 리더십 부재를 재확인한 계기였다.
더욱이 가와부치 전 회장이 후임으로 거론된 직후 모리 회장보다 1살 더 많은 고령(84세)에다 우익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는 트위터에 우익성향 월간지인 '하나다(Hanada)', '윌(WiLL)'의 애독자로 밝힌 바 있다. 2019년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에 대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짓밟는다"고 주장한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나고야 시장을 응원한 적이 있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쓴 '반일종족주의'에 대해서도 "한국인 학자가 이런 책을 출간했다는 데 감동했다"며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전면 부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적었다.
올림픽을 5개월 앞둔 가운데 조직위 수장 교체에 따른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교도통신은 "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싼 회의론 속에 (이번 사태로) 개최 준비는 더 혼미해졌다"고 전망했다.
주사기 확보 못해 화이자 백신 20% 날릴 판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첫 물량(40만회분)이 12일 일본에 도착했다. 당초 14일 도착 예정이었지만 이틀 앞당겼고 후생노동성은 전문부회를 열고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는 사용 특례승인을 인정하기로 했다. 스가 총리도 이날 밤 취재진에게 "정말 환영할 일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확실히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화이자 백신은 일본에서 승인을 받는 첫 코로나19 백신이다. 이르면 17일부터 안전성 조사 목적에 사전동의한 의료종사자(1만명)를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된다. 2월 하순으로 예정됐던 접종 시기를 앞당긴 것도 일본 정부가 백신 확보와 접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은 화이자 백신 접종을 위한 특수 주사기를 확보하지 못해 일부 확보 물량을 날리게 될 처지에 놓였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9일 화이자 백신의 병당 접종 횟수를 당초 6회에서 5회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한 병으로 6회를 접종하려면 주가시 끝부분에 남는 백신의 양이 적은 특수 주사기가 필요한데 이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당초 화이자로부터 병당 6회 접종을 전제로 7,200만명분(1억4,440만회분)을 공급 받기로 했다. 그러나 주사기 문제로 병당 5회로 줄면서 전체 확보 분량의 20% 정도인 1,200만명분(2,400만회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말 화이자로부터 '병당 6회 접종을 검토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새로운 주사기 도입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백신 도입과 접종을 서두르고 있는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3,600만명)에 대한 접종 시기는 당초 3월 하순에서 4월 이후로 다소 늦춰졌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백신 공급과 접종 시기를 가늠하기 점점 어려워진 탓이다. 백신 공급은 정부 몫이지만 접종은 지자체가 주체다. 지자체들은 백신 공급 일정 등 접종 준비에 필요한 정보 공유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접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장소 확보가 관건으로 지적된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2회씩 접종을 진행하기 위해선 접종 기록 등을 일원화해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주민등록이나 행정 전산망이 통일돼 있지 않아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후생노동성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진행된 모의훈련에서도 의료 인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코로나19 백신은 두 차례 맞아야 하고 정부 계획대로 3개월 안에 65세 이상 고령자 중 희망자가 절반이라고 가정한 경우에도 매일 약 40만회를 접종해야 한다.
그러나 문진에서 접종까지 3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모의훈련 결과 약 7분이 걸렸는데, 의사가 담당하는 문진 단계에서 시간이 더 걸린 것으로, 이를 단축하기 위해선 충분한 의료 인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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