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비율 과학 논란 속 英 학자 "부모소득 수준 영향" 논문 또 발표
손가락 비율 과학은 손가락 검지(두 번째 손가락) 길이와 약지(네 번째 손가락) 길이의 비율이 크고 작음의 원인을 탐구하는 연구 분야다. 태아 시절 성호르몬에 노출된 정도에 따라 이 비율이 영향을 받는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 값이 작아진다. 상대적으로 검지가 짧고 약지가 길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에 많이 노출되면 값이 커진다.
존 매닝 영국 스완지대 공과대학 교수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손가락 비율'이 작다는 연구를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바이오소셜 사이언스’ 인터넷판 9일자에 발표했다. 매닝 교수는 손가락 비율 가설을 이를 처음 제기한 연구자다.
연구팀은 지난 2005년 7월 BBC와 사이언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이 설문 조사에는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총 15개가 넘는 국가에서 총 25만 5116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양손의 손가락 비율, 신체적 특징, 성격, 성장기 때의 부모의 소득 수준을 포함해 총 200개의 질문에 답했다. 부모의 소득 수준의 경우 다른 부모들의 소득 수준과 비교해 매우 낮았다, 현저히 낮다, 약간 높다, 매우 높다 등 4단계로 답했다.
연구팀이 부모의 소득 수준과 남녀의 평균 손가락 비율을 비교한 결과 성별에 상관없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매우 낮다고 답한 집단의 양손의 평균 손가락 비율이 가장 컸고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점점 작아졌다. 남자의 경우 부모의 소득 수준이 매우 낮았을 때 평균 손가락 비율이 오른손 0.986, 왼손 0.985이었고, 소득이 매우 높은 경우 오른손 0.982, 왼손 0.983이었다. 여자 역시 소득이 매우 낮은 경우 오른손 0.995, 왼손 0.993이었고 소득이 매우 높은 경우 오른손 0.993, 왼손 0.991으로 나타났다.
만에 하나 부모의 소득 수준이 같으면 여자의 손가락 비율이 남자의 손가락 비율보다 컸고 이런 경향은 백인, 영국인, 미국인 남녀를 따로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가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트리버스-윌라드 가설은 미국의 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와 컴퓨터과학자 댄 윌라드가 1973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공개한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동물은 자손을 많이 퍼뜨리려면 낳을 수 있는 자녀 수가 제한된 암컷보다 많은 암컷을 차지할 수 있는 수컷을 낳아 강하게 기르려고 한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으면 강하게 기를 수 없고 결국 경쟁에서 밀릴 것이므로 암컷을 낳는 쪽을 택한다. 이를 인간에 적용하면 여성이 자녀를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남자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여자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연구팀은 이런 심리가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분비량에 영향을 주고 태아의 손가락 비율이 바뀐다고 해석했다.
매닝 교수는 1998년 남녀의 손가락 비율과 성호르몬 수치를 비교해 손가락 비율이 사람의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농도, 남자의 경우 정자 수를 예측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손가락 비율과 성격, 인지 능력, 심혈관 질환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가 무수히 쏟아졌는데 사이언스가 2019년 6월 보도한 기사를 보면 관련 논문이 1400편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손가락 비율 연구에 회의적인 학자들도 있다. 비판론자들은 성호르몬이 검지와 약지 길이에 영향을 준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고 손가락 마다 성장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손가락 비율이 단순히 손 크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학자들은 손가락 비율 과학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다며 비판하기 시작했고 일부 학술지는 더는 손가락 비율 관련 논문을 받지 않기로 한 사례도 있다. 이런 지적들을 반영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19년 6월 손가락 비율의 과학에 회의적인 입장을 담은 심층기사가 실렸다. 마틴 보라섹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손가락 비율 연구는 불확실한 토대 위에 지은 카드 집과 같다"고 말했다.
[김우현 기자 mnch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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