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에 활짝 열린 '정부 곳간', 그런데 우린 해고됐다
[희정 기록노동자]
비행기 안에서는 농담이 늘어난다. '아주 쪄 죽여라' 하다가 옆 사람 보고 말한다.
"야, 네가 쓰러져라."
회사 '놈'들 독해서 사람 하나 쓰러지기 전엔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동료 보고 쓰러지라 한다.
"나 같이 덩치 좋은 사람이 쓰러지면 회사가 믿어주지도 않아. 빼빼한 애가 쓰러져야지."
"우리는 어떻게 쓰러지지도 않니?"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제일 독해."
독하고 참을성 많은 사람들
회사보다 더 독한 사람을 찾아내는 곳도 비행기 안이다. 수백 대의 비행기를 가진 거대 항공사는 낭비를 싫어했다. 그래서 운행하지 않는 비행기의 전기를 차단했다. 날지 않는 비행기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청소를 하고 비품 관리를 했다. 전기도 에어컨도 난방도 없이 "여름에는 쪄서 죽고, 겨울에는 추워서 난리"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땀에 전 몸은 항공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항공사 소속 직원도 아니었다. 항공사가 속한 거대 기업이 자회사를 만들고, 그 자회사가 하청업체를 만들어, 이들을 고용했다. 1만 명이 일한다는 공항에서 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돌아보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바뀔 것 같지 않아 동료에게 쓰러지라 했다. 사람 하나 죽어야 달라질 것 같았다.
고객들의 용변이나 토사물이 그대로인 화장실 칸을 발견할 때는 서로에게 복권 사라고 했다.
"우리는 그런 걸 보면, 너는 집에 가서 복권 사, 그랬어. 일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지."
로또를 사고,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거대 항공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만든 용역업체는 참을성 많은 사람만 고용했다. 사회가 잘 참는 노동력이라 여기는 나이 든 남성과 여성들이었다. "여기는 월급이 제때 나오잖아." 그 이유만으로도 참았다.
그런데 공항은 참을 이유가 많은 사람을 데려다가 '더는 못 참겠다' 선언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2015년,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없던 게 생기니 너무 좋아서
아시아나 지상조업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아시아나 에어포트'의 재하청 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 이곳 소속 노동자들은 주로 기내 청소와 수하물 분류 일을 했다. 5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며 이들은 하루하루 인내심 테스트 같은 노동이 끝났다고 믿었다.
"노조가 생기니까 일단 너무 좋은 거야. 사람들 표정에 해방감 같은 것 있잖아, 감옥에서 풀려난, 억눌렸던 것들이 풀려난 그런 모습인 거야. 일할 때도 몸자보를 입고. 그러고 비행기에 올라가고 그랬거든."
겨울이면 칼바람 불던 공항이었는데도 노동조합 피켓을 들고 서면 추운 줄도 몰랐다고 했다. "없던 게 생기니 너무 좋아서."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아 같은 회사에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만들어진다. 조합원 대다수가 그리로 갔다. 300명이 가입했는데 15명도 남지 않게 됐다. 복수노조법 시행 이후 흔히 있는 일이다. 소수노조엔 교섭권이 없다. 새로 생긴 노조는 수당 몇 푼 올리는 것 말곤 바꾸고 싶은 것이 없어 보였다.
"노동자가 돈이 있어? 빽이 있어? 단체행동권, 교섭권 그것만이 유일한 빽인데. 그런 걸 막아놓으면 노조하지 말라는 거지."
손발 묶인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했다. 체불임금 소송도 하고, 기내 청소에 쓰이는 '발암 물질' 약품도 잡아냈다.
"ek맨파워라는 회사가 있었어요. 대한항공에서 우리랑 같은 일을 하는 회사인데, 거기서 청소용품 때문에 질식하고 난리가 났어. 그걸 듣고, 분명 대한항공이 쓰면 아시아나도 쓸 거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물품을 쓰는지 다 사진을 찍었지. 유심히 보니까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거야. 유해물질이잖아. 그 약품을 몰래 담아 가지고 밖으로 나갔지. 성분 의뢰를 했는데, 문제가 있는 약품인 거야. 고발을 해서 노동청에서 감사(특별근로감독)가 나왔어. 우리 보호장구 하나도 없는 거. 마스크도 안 주는 거. 안전교육 받은 적 없는 거. 회사는 다 걸린 거야. 벌금 물고."
그러자 변했다. 비행기에 불이 들어오고, 난방도 됐다. 독한 약품은 사라지고 보호장비가 지급됐다. 사람 하나 쓰러지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용감해진 덕분이었다. 더는 농담으로 위안하지 않았다. 직접 말하고 지적했다.
노조 하니 용감해졌다
'노조하니 용감해졌다'는 소리를 '노조 하는' 사람들은 종종 한다. 할 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마술 부린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조 하고 똑똑해졌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부당함을 알았다. 일한 만큼 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월급명세서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치챘다.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말하면 잘리니까. 너 나가라고 하는 것만 해고가 아니다. 어떤 비행기, 어떤 칸을 담당할지 모든 스케줄을 관리자(감독)가 쥐고 있었다. 스케줄표 몇 개만 수정해도 나가라는 소리였다.
갑자기 용감해진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것을 '함부로 잘리지 않는다'는 감각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라 추측했다. 노동조합 가입 후 이들은 자신이 함부로 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당해고를 법으로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고도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괴롭히면 나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버티라고 말해주는 노조 동료들이 있었다. "나는 떳떳해" 이 말이면 초라하지 않았다.
오물만 빼세요
찜통 같은, 어두컴컴한 기내에서 "무릎이며 손목이며 다 나가도록" 일했다. 곱게 했나. 처음 들어가서 "6개월은 박박 기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최고다, 잘했다, 말해주지 않았다.
동료들끼리도 그랬다. '여초' 일자리에 돈독함만 있다면 그것은 동화 속 이야기다. 게다가 여기는 "북새통에, 시장바닥에, 전쟁터"라고 했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야 했다.
"감독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어요. 5분 작업입니다. 10분 작업이에요. 오물만 빼세요."
모두 같은 소리였다. 빨리해라.
"우리들끼리 쓰는 말이 있어. '치고 빠진다.' 그런 건 제주나 일본 같이 가까운 데 가는 비행기를 말해. 오자마자 또 바로 나가야 하는 비행기야. 그런 건 빠르게 쳐내야 해. 급할 때는 10분 이내로 해야 해. '오물만 빼세요'는 기본만 하라는 말이야. 비행기가 작다고 해도 150석이 넘으니 너무 힘들지."
큰 비행기라고 천천히 하세요, 하는 것도 아니었다. A-380 기종의 초대형 항공기는 수용 가능 인원만 490명이 넘는다. 대형 항공기는 장기노선이니 챙겨야 할 비품이 더 많았다.
400여 좌석에 놓을 400여 개의 모포를 들고 날랐다. 무게를 재보니 모포 10장이 5kg이라고 했다. 양손에 들면 10kg. 일이 몰리면 '우아하게' 한 손에 하나씩이 안 된다. 어깨에 이고 머리에 이고 서너 개 묶음을 들고 나른다.
너 일 많이 하니 기특하다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꼭 그렇게 4개씩 드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일하고 쉬는 날엔 병원 순회하는 거야." 모포 4개 들고 옮기는 사람은 2개 드는 사람을 못마땅해한다. 너는 공주고 나는 시녀냐. 신입일수록 대놓고 타박하기 좋았다.
퇴사한 어떤 이는 생리 때면 낮이건 아침이건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차고 일했다고 했다. 땀에 짓물러도 어쩔 수 없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 했다. 원망은 '선배'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바쁜 데 화장실 간다고 나가면 선배들 눈치 봐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말하고 퇴사했다.
어떤 신입은 오기로 버텼다. "내가 여기서 승리해야겠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도 스스로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보통은 일이 버거워 서너 달을 못 버틴다고 했다.
이들끼리 공주냐 시녀냐 했지만, 모포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은 더 고급진 모포를 사용했다. 일하는 사람에겐 더 무거운 비품이라는 소리였다. 대형 항공기는 2층에도 승객을 태웠다.
"2층에는 모포를 어떻게 보내냐. 무거워서 들고 나를 수가 없으니 사람들이 죽 일렬로 서. 릴레이처럼 옆 사람한테 건네는 거야. 사람이 적으면 간격이 멀어지잖아. 그럼 너무 숨 가쁜 거야. 죽을 둥 살 둥. 기진맥진. 좀 쉬려고 하면 감독이 소리 지르고. 사람을 쥐어짰지."
싸우긴 해도, 동료들만이 집 가는 길에 "우리 오늘 미치게 힘들었지?" 물어봐 주었다. 다음날이면 졸다가 몇 정거장을 지나쳤는지 말하느라 바빴다. 노동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것은 일하는 사람밖에 없었다.
딜레이 안 먹게 하려고
잘릴까 봐 그리 고단하게 일한 것만은 아니었다. 애썼다고 했다. "우리가 현실을 아니까. 안 올라갈 수도 없어. 가서 해줘야 해." 무슨 현실? 나이 든 노동자가 달리 일할 곳 없는 현실? 여자 노동 값 후려치는 현실? 각종 현실을 떠올리는데, '비행기가 나가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
"애쓰게 일해 놓고, 5분 늦어 딜레이가 되면 회사가 (점수) 깎이잖아."
항공기가 정해진 시간에 나가지 않으면 지연이고 사고다. 그래서 잔말 없이 일하고, 누가 말 안 해도 일하고, 신입과 동료들을 구박하며 일했다. "딜레이 안 먹게 하려고."
현실은 이랬다. 대형 항공사는 적은 비행기로 많은 노선을 운항하려 했다. 그게 돈 버는 길이라 했다. 비행기가 멈춘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러니 들어오자마자 나가야 하는, 일명 '치고 빠지는' 항공기가 존재한다.
특히 이런 일은 아시아나항공에서 빈번했다. 2017년 아시아나 항공기 보유율은 86대. 이 비행기로 월 평균 1만 2000편을 운항했다. 30일로 나눠보면 하루 400편 운항(화물 운송 포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항공과 비교해봐도 항공기 수가 2배나 적다. 그에 비해 운항 횟수는 0.3배 적을 뿐이었다.
비행기가 '딜레이' 되는 까닭은 날씨 탓도, 하청노동자들의 게으름 때문도 아니었다. 항공기 수에 비해 운항 횟수가 너무 많았다. 무리하게 운항 횟수 늘린 데는 아시아나의 경영난이 있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무리한 투자(대우건설 인수), 박삼구 회장의 배임/횡령 등은 손실로 이어졌고, 이를 '빨리빨리'로 메웠다. 그나마 가능했던 것은 "여름이면 해외 가는 비행기가, 가을이면 수학여행 가는 비행기가 종일 다니던" 관광 산업의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닥쳤다.
7조 원 지원과 실업급여
정부는 항공위기 대란을 막는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7조 원이 넘는 지원금을 투여하기로 했다. 국책은행이 아시아나에 지원한 돈은 3조 5000억 원이다. 두 기업의 인수·매각 비용도 정부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항공산업 종사자들은 무엇을 지원받나. 실업급여? 코로나19로 인해 퇴사한 승무원이 방송에 나와 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공항이 있는) 도시의 카페 알바는 거의 다 전직 승무원이라고. 일이 없어 알바를 전전한다는 이야기다.
정규직이 이러할 진데, 비정규직-용역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나케이오도 직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라고 했다. 최소인원(120여 명)만 남긴다고 했다.
회사는 무급휴직에 사인하지 않는 사람은 해고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도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휴업수당의 90%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회사는 나머지 10% 금액마저 부담하길 거부한 것이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자르기 편하려고' 쓴 하청업체 직원을 못 자른다니. 그 돈이 얼마든 아까울 것이다.
가진 사람들의 농담 따먹기
500여 명 직원 중 11명만이 무기한 무급휴직을 거부했다. 이 중 8명이 정리해고됐다. 모두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노조 지부장(김정남)과 부지부장(김계월)도 해고 명단에 있었다.
무급휴가에 동의할 시, 회사가 미운털 박힌 민주노총 조합원을 다시 불러줄 리 없다고 했다. 기한의 정함이 없는 휴직이었다. 관리자가 안 불러주면 끝이다.
"우리는 이런 게 처음이니까 뭘 알아요. 게네들(케이오)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거고. 지나고 나니까 아, 잘했구나. 악 소리라도 낼 수 있어서."
'악' 소리 냈다. 이들이 노조 가입부터 해고된 지금까지 지키고자 한 것은 바로, 할 말 하는 자신이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장을 세웠다. 철거하면 또 세웠다. 그리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지난해 7월 지방노동위는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해고 회피 노력도 없고, 해고 당사자와의 합의도 없었다. 부당해고 판정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해 12월에는 중앙노동위로부터도 승소 판정을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고 상태이다.
아시아나는 복직 명령을 거부하고 행정심판 소송에 들어갔다. 김앤장 출신 변호사 3명을 고용했다. 휴업 수당(유급휴직) 10% 비용은 아껴도, 수천만 원짜리 변호사 비용은 아끼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최소인원으론 유지가 버거워 매일 같이 연장 근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농담 주고 받으며 버틸 수만은 없기에 노조를 세웠다. 그런데 이들이 해고되어 거리에 서 보니, 농담 따먹기는 사장들이 하고 있었다. 돈 있으면 법을 피해갈 방법이 수십 가지였다.
일하는 우리에게 1순위란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의 농성이 270일을 넘어섰다. 힘들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뭐 이게 내 일이니까. 아니면 누가 이걸 하겠어?"
그래, 이것은 이들의 생계 문제이다. 노조 하며 배운 것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살아온 저력으로 버틴다. '함부로 잘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이들의 고됨과 변화를 언급하기 보다, 국가의 노력을 말해보자.
정부의 주머니가 두 거대 기업을 향해 열린 것은 코로나19 시기만이 아니었다. 호황 때도 항공사들은 매년 500억 원에 가까운 세금을 감면받았다. 당시 항공업 종사 하청노동자가 받은 혜택이라고는 끽해야 연장근무 수당이었다. 노동조합의 체불임금 소송이 증명하듯, 받아야 할 돈마저 떼였다. 위기가 왔을 땐, 가장 앞서 그 손실을 책임지라고 했다.
조 단위 지원을 하면서도 기업에 '해고금지' 같은 조건을 내 걸지 않는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마저 강제가 아닌, 사업주의 선의에 맡겨둔 채다. 선의가 없는 사업자는 위기를 노동조합 탄압 수단으로 활용한다. 아시아나케이오처럼 말이다.
일하는 사람의 고용 위기는 바이러스로 인해 새로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바람만 불어도 해고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데 적극 동참한 이는 정부다. (파견·용역 고용을 가능하게 한 법은 누가 만들었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같은 비영리재단이 용역업체를 산하에 두는 일을 누가 방조했나.)
지금의 정부도 '코로나19 정리해고'의 대표 사례라 불린 아시아나케이오 문제를 관망하고 있다. 정부에게 일하는 사람의 고용은 위기의 순간 몇 번째로 구해야 할 순위일까.
설 명절이다. 해고자들이 명절에도 거리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말하진 않겠다. 270일 넘게 거리에 선 까닭은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인, 우리에게 함부로 해고되지 않을 권리란 1순위이니까.
(이 글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김계월 부지부장과 김하경 조합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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