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하기 직전인데.."자금 지원해달라"며 '3년 주기 임단협'은 못한다는 쌍용차 노조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2021. 2.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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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조, "책임 다하겠다"는 입장문 냈지만
산은 지원 전제조건인 '3년 주기 입단협'은 "불가"
업계 "생사기로에서도 금속노조 눈치보기" 지적
[서울경제]

지난 5일 아침,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명의의 보도자료가 배포됐습니다. “비록 대주주 마힌드라와 인수 후보자 HAAH 오토모티브와의 매각 협상이 불발되며 쌍용차가 ‘P플랜’에 돌입하게 됐지만, P플랜 회생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새 투자자가 (인수를) 하루 빨리 결심할 수 있도록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파업하지 않고 회사가 잘 매각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앞서 마힌드라와 HAAH는 회생개시 보류(ARS 제도) 법정기간인 오는 28일까지 매각협상을 완료하려고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쌍용차 노조가 ‘안정적 노사관계’와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이 내용을 보고 업계에선 “알맹이가 없다” “(노조의 태도가)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나옵니다. 산업은행에서 지난달 12일 쌍용차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못박았던 ‘3년 주기 임단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노조가 이미 이 조건에 대해서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는 했습니다. 지난 달 20일 쌍용차 노조는 선전물을 통해 “3년 주기 단협 요구는 노사정 대타협 속에서도 불발된 사안이고, 한국GM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면서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3년 주기 교섭은 노조가 결정할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쌍용차 노조는 파업은 안하겠다면서도 왜 ‘3년 주기 임단협’은 못 받겠다고 하는 걸까요. 업계에서는 2009년 전 국민적 이슈가 됐던 공장 점거 파업 이후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쌍용차 노조가 아직도 금속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연합뉴스

현재 매년 하고 있는 임단협의 주기를 늘리는 것은 노사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입니다. 대립적 노사관계에 지친 자동차 회사들의 ‘숙원 사업’이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파업과 대립으로 점철되는 임단협을 매년 소모적으로 하지 말고, 미국(4년)이나 스페인(3년)처럼 다년 주기로 하자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임단협이 있는 해에만 심도있는 노사 협상을 하고, 나머지 해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수 있다는 겁니다. 르노삼성의 경우 지난해 임단협을 아직도 타결하지 못했는데, 해를 넘겨 임단협을 매듭 짓는다고 해도 또 곧바로 올해 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일년 내내 노사 협상만 하느라 진이 빠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노조로서는 이를 괜히 다년 주기로 바꿔줄 이유가 없습니다. 협상력이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고도성장기에 매년 투쟁해서 얻어내 왔던 관성도 작용합니다. 한국GM은 지난해 2년 주기 임단협 내용을 노조에 제시했지만, 노조는 고민 끝에 이를 반대하고 파업을 벌인 끝에 1년 짜리 내용만 타결했습니다.

여기에 쌍용차 노조의 딜레마가 있다고 자동차 업계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GM에서도 실패한 정책” “노조의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쌍용차 노조의 얘기에 속내가 담겨 있다고 보여집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에서도 안 된 문제를 왜 우리에게 던지냐는 것이고, 권한이 아니라는 얘기는 한마디로 부담스럽다는 것”이라면서 “괜히 3년 주기 임단협 제시안을 받아들였다가 노조 사회에서 매장 당하기 싫다는 얘기”라고 꼬집었습니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사진제공=쌍용차 노조

쌍용차 노조에 대한 “아직 멀었다”는 업계 지적도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이 판국에 ‘찬 밥 더운 밥’ 가린다는 얘깁니다. 사실 산업은행이 ‘쟁의행위 중지’와 ‘3년 주기 임단협’을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을 때, 업계에서는 쌍용차 지원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조건 외에도 매각이나 정상화 계획 등이 먼저 진행 돼야하기는 합니다만, 그동안의 ‘지원 불가’에서는 한 발 나아간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도 쌍용차 노조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해당 발언이 나온 후 일주일 만에 곧바로 불가를 선언한 뒤, 이달 5일 보도자료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생사기로에 서 있지만 다년 주기 임단협 만큼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쌍용차 노조의 얘기도 일리가 있지만, 반대로 노조에 막혀 사회적 논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아니냐”며 “쌍용차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면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트는 데도 도움이 될 텐데,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도 이를 거부하는 것은 아직도 금속노조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5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다시 생존의 기회가 온다면 소형 SUV 시대를 연 티볼리처럼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차량 개발로 보답할 것”이라며 “쌍용차와 협력사에 대한 자금지원 등 정부와 채권단의 실질적 해법이 제시되길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산업은행은 자신들이 제시한 전제조건이 거부됐는데 ‘실질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이 조건 외에도 쌍용차를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있습니다만, 다년 주기 임단협 문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앞으로 지켜 볼 일인듯 합니다.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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