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강아지를 찔러 죽인 게 죄가 아닌가

신정은 기자 2021. 2. 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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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아버지와 누나, 강아지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A 씨에게 환청이 불현듯 들려왔다. A씨는 아버지의 목을 졸라 살해했고 반려견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이어 누나의 목도 졸라 살해했다. 평소 조현병을 앓았던 A 씨는 존속살해죄와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부엌 서랍에서 흉기를 꺼내 반려견을 찔러 죽인 행위에 대해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사례 2] 어떤 이유로 화가 난 B 씨는 무작정 여자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고 여자친구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이어 반려견을 잡아채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이렇게 죽는 거다! 잘 봐라!" 소리치며 위협을 계속했다. 그리고 겁먹은 여성을 성폭행했다. 그는 강간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처해졌다.

그러나 반려견의 입을 틀어막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한 행위에 대해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사례 3] 강아지가 사료를 먹지 않고 침대 밑으로 숨었다. 남성 C 씨는 강아지를 향해 살충제를 뿌려댔다. 아내가 말리자 그는 아내의 얼굴을 때리고 흉기를 휘둘러 손목과 다리에 상처를 입혔다. 그는 특수상해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그리고 보호관찰 및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반려견을 위협하며 살충제를 뿌리고 괴롭힌 행위에 대해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어제(2021년 2월 12일)부터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동물을 학대하면 이전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동물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동물을 학대해 죽이면 처벌 규정이 기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습니다.

2019년 5월, 경기도 이천에서 술에 잔뜩 취한 한 남성이 길거리에서 진돗개를 상대로 음란행위를 한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생후 3개월 된 강아지는 이 일로 배변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상식 밖의 끔찍한 동물학대는 많은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동물 학대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는데 한 달 만에 20만 명 넘게 참여했습니다. 정부도 동물 학대 처벌 강화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2021년, 비로소 시행하게 된 겁니다.

2019년 5월, 한 취객이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성적으로 학대한 일이 알려지며 많은 공분을 샀다.


● 처벌 강화하면 끝? 동물 학대로 다뤄지지 않는 일도 '수두룩'

이제부터는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면 더 무거운 벌을 받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과연 적당한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동물 학대를 엄벌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법 개정까지 이뤄냈기에 유의미한 변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뉴질랜드, 영국 등 다른 나라의 동물 학대 처벌 수위에 비하면 낮습니다. 또 동물 학대행위는 나아가 대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처벌 수위가 과연 적절했는지 따지려면 일단 처벌이 내려져야 합니다. 동물을 잔혹하게 괴롭히고 죽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몇몇 판례를 보면 명백한 동물 학대행위가 이뤄졌음에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동물을 괴롭히거나 죽인 사실이 있어도 아예 범죄행위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 다른 범죄 행위 중 일어난 동물 학대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묻혔습니다.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동물학대 판례평석(2021.1)'에서 "동물 학대 처벌 조항이 강화된 건 고무적이지만 범죄의 인정 여부가 수사 또는 기소를 담당하는 사람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땜질식' 법 개정…처벌 사각지대

동물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영국의 경우 동물 학대를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행위"로 포괄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현행법은 동물 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을 죽일 때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고의로 사료나 물을 주지 않는 행위 등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행위를 열거하는 방식은 오히려 동물 학대 처벌의 사각지대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주둥이에 갖다 대 개 수십 마리를 죽인 사건에 대해 당시 1, 2심 재판부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소유자가 동물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무죄 판결했습니다.1) 위에 언급한 '이천 진돗개 수간 사건'에서도 피해견이 배변 장애라는 상해를 입었기 때문에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인정됐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어떤 사람이 동물을 상대로 성학대를 저질렀어도 죽이거나 다치게 한 게 아니면 처벌할 규정은 없습니다. 동물보호법은 1991년 제정된 이후 9차례 개정됐는데, 사회적으로 논란이 야기된 개별 사건에 따라 땜질하듯 후속 대책으로 개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물 학대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학대 발생 건수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입수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발생 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2019년 914건으로 10배 넘게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 304명뿐입니다. 이마저도 대부분 벌금형, 선고유예 처분에 그쳤고 실형을 선고받은 건 고작 10명입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인식은 법과 시민들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해 잔혹한 동물 학대 대응조차 미흡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일쑤"라고 꼬집었습니다. 무고한 동물이 잔혹하게 학대와 죽임을 당했는데도 논의조차 되지 못해 가해자가 처벌을 면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 글을 열며 나열한 사례들은 동물보호법 시행 30주년을 맞이해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낸 '동물학대 판례평석(2021.1)'에서 발췌했습니다. 동물학대 판례평석은 동물자유연대 누리집에서 PDF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1) 대법원은 '개 전기도살 사건'에 대해 1,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뒤집었습니다.
2) 박중원 변호사, 동물학대 판례평석(2021.1) p13-25

신정은 기자silv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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