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 목사님.."교역자도 노동자입니다"
교회 내 노동문제에 더해 고질적 병폐도 고쳐나갈 것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부목사, 전도사, 관리집사, 반주자들도 노동자입니다."
엄태근 기독노동조합 위원장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라면서도 노동자를 이만큼 명쾌하게 정의한 사람이 없다며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다. '목사'인 그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그에게 노동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각별했다. 부목사 근무하던 교회에서 해직된 뒤 해고무효 소송을 벌였던 그는 자신의 신분을 '노동자'라고 주장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5일 경기 파주시 기독노조 사무실 인근의 카페에서 만난 엄 위원장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준비된 질문에 차근히 답을 하던 그의 목소리는 교회에서 근무하는 부교역자(부목사, 전도사)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높아졌다.
그는 교회 내 노동이 '봉사' '하나님의 일' 등 아름다운 말로 포장되고 있지만 결국 '헌신페이, 은혜페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며 부교역자들 또한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이런 상황이 변화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국 개신교 교회는 대부분 교회 내 교역자나 직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교회가 이렇게 노동관계법 외의 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부당해고,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함에도 교회 내 직원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교회에서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님과 교용관계를 맺을 수 있냐"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신고를 해도 재판마다 판결이 달랐다. 똑같은 퇴직금 미지급 사건임에도 어떤 부목사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은 반면 다른 전도사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패소하기도 했다.
엄 위원장 본인도 법원을 통해 '노동자 아님'을 선고받은 당사자다. 그는 3년간 일하기로 약속했던 교회에서 담임목사와의 마찰로 1년 만에 해직됐다. 이후 2018년 10월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까지 연달아 패소하게 됐다.
교회는 소송이 끝나자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까지 진행했다. 엄 위원장은 이 소송에서도 패소해 자신의 소송비용 2000여만원에 더해 교회 측 소송비용 1200여만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엄 위원장의 머리와 마음을 지배한 감정은 이런 '억울함'이었다. 그는 담임목사에게 종속돼 매번 지시를 받아 일했고 매주 일을 했던 기록이 '사역보고서'의 형식으로 남아 있었다.
엄 위원장은 목사가 자신에게 지시를 내린 문자 내용을 포함해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만한 모든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은 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누가 봐도 원고가, 엄태근 부목사가 근로자라는 근거가 차고 넘치는데 법원이 그렇게 판단해 버리니 판사를 쫓아가서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노조의 기틀이 된 것도 결국 이 억울함이었다. 엄 위원장은 자신과 같은 분노를 가진 부교역자들과 뜻을 나누기 위해 지난해 5월 초 페이스북에 '부교역자 인권찾기'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이 모임이 노조의 기틀이 됐다.
모임과 노조를 만들자 여기저기서 부교역자들의 노동문제를 상담하는 문의가 쏟아졌다.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등 문제의 종류도 다양했다. 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교회가 예배를 볼 수 없게 되자 부교역자들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관련기사: 코로나로 헌금 줄어든 교회…부목사·전도사부터 쫓아냈다)
노조의 역할은 이런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고 해당 교회에 전화를 걸어 중재를 하는 것이다. 노조의 중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회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며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조 창립부터 6개월간 약 100여건의 사건이 해결됐다.
반년간의 노조 활동에서 가장 큰 성과로 엄 위원장은 "교회 내 열악한 노동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라고 꼽았다. 그는 "그동안 이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나선 사람은 많지 않았다"라며 "(노조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해 문제를 제기하고 확대하고 알리니 교계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엄 위원장은 부교역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교회 내 불평등한 권력 구조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교회법상 교회 내 교역자나 직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담임목사는 노동관계법에 구애받지 않고 이들에게 저임금의 노동을 시키거나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부교역자들의 경우 결국 자신도 담임목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목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더불어 엄 위원장은 교회가 잘못된 교리로 교인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회가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주의 종' '하느님의 쓰임을 받는 일'이라면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교회와 신앙에 반하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기독노조는 이런 교회 내 노동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결국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병폐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이를 개혁하는 것도 노조 활동의 목표로 두고 있다. 노조는 예배활동의 사업화, 근거 없는 각종 헌금 갈취, 교회 세습 등 교회가 대형화·상업화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와 교인들이 흩어져 작은 단위에서 골고루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엄 위원장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시대에서 일부 교회가 보여준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일부 교회들이 감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예배당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배경에는 돈이라는 이유가 있다며 현재도 당국의 관심을 잘 받지 않는 지방의 일부 기도원 등에서는 방역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예배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엄 위원장은 과거 자신이 근무하던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나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두차례 수술을 받았고 현재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수천만원의 소송비 부담하게 됐지만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싸우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누군가는 바위에 계란을 치는 싸움이라도 송곳처럼 뚫고 나와야 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송곳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현재 기독노조를 설립했고 교회 내 노동자들의 노동 문제를 해결해 주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활동이 제가 지불한 재판 비용보다 더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potgu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한달 120 줄게, 밥 먹고 즐기자"…편의점 딸뻘 알바생에 조건만남 제안
- 지퍼 열면 쇄골 노출 'For You♡'…"이상한 옷인가?" 특수제작한 이유에 '반전'
- "순하고 착했었는데…" 양광준과 1년 동고동락한 육사 후배 '경악'
- 숙소 문 열었더니 '성큼'…더보이즈 선우, 사생팬에 폭행당했다
- 미사포 쓰고 두 딸과 함께, 명동성당 강단 선 김태희…"항상 행복? 결코"
- "로또 1등 당첨돼 15억 아파트 샀는데…아내·처형이 다 날렸다"
- "자수합니다"던 김나정, 실제 필로폰 양성 반응→불구속 입건(종합)
- '나솔' 10기 정숙 "가슴 원래 커, 줄여서 이 정도…엄마는 H컵" 폭탄발언
- '55세' 엄정화, 나이 잊은 동안 미모…명품 각선미까지 [N샷]
- "'누나 내년 35세 노산, 난 놀 때'…두 살 연하 예비신랑, 유세 떨어 파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