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파워·소프트파워 잇는 '백신파워'.. 중국과 인도의 백신 외교전

박종현 2021. 2.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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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의 '백신 국수주의' vs 중국·인도의 '백신 무상공급'
캄보디아에 무상공급하기로 한 중국 시노팜의 코로나19 백신 60만 회분 중 일부 물량이 도착한 지난 7일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인부들이 백신을 옮기고 있다. 프놈펜=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정치에선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백신 외교, 백신 여권, 백신 통화(화폐) 등이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이전에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주목받은 것처럼 2020년 이후 ‘백신파워’가 국제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백신 생산국, 中·印의 백신파워

백신파워를 주름잡는 나라로는 중국과 인도가 꼽힌다. 석유부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적극 움직이고 있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생산국인 중국과 인도는 해외에 백신을 공급하면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백신 외교전은 올해 태동한 용어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유럽 외교가에서는 백신 외교전 전망이 불거졌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에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는 백신이 활용된다는 보고가 잇따르면서 백신 외교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신화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 등이 백신을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인도적인 지원을 비롯해 소원해진 나라와 관계 개선, 이웃나라에 무료 제공, 경쟁국가로부터의 영향력 차단 등의 여러 용도다.

중국은 지난해 자국 백신의 임상 3상 시험이 끝나기 전부터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지난해 UAE에 백신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 백신을 수출하거나 공급하고 있다. 최근엔 이집트에 3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중국 시노백와 시노팜 백신 수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백신 수출이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백신 공급 지연, 수입 결정 이후 발표된 낮은 안전성 수치 등으로 곧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세계적으로 백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측면은 중국의 백신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백신 생산공장인 ‘세룸 인스터튜트 인디아’(SII)를 지닌 인도는 여러 이웃나라에 백신을 무상으로 공급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협력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SII는 하루 250만 회분의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인도는 인접국인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몰디브, 스리랑카, 셰이셀, 아프가니스탄 등에 백신을 공급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네팔,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줄다리기 상황에 놓인 스리랑카도 인도로부터 백신을 제공받았다. 스리랑카는 중국과 인도 양국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았다.

자국민에 대한 백신 접종 비율도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도의 이웃나라에 대한 백신 공급엔 중국 견제의 측면도 있다. 중국은 최근 인도의 뒷마당으로 인식돼 왔던 스리랑카, 몰디브, 네팔 등을 향해 적극적이고 발 빠른 경제적 지원활동을 펼쳐왔다. 그동안 외교적 영향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인도 정부 입장에서 백신이 천군만마가 된 것이다.

인도는 최근 국제사회의 인지도 제고에 나섰다. 브라질과 모로코에 유상 공급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강화한 것처럼,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백스에 2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도 코백스에 1억 회분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지난 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인도 세룸 인스터튜트에서 생산돼 무상 제공된 백신 물량 50만 회분의 일부를 옮기고 있다. 카불=AP연합뉴스
◆석유부국 UAE도 가세…‘국수주의’ 비판받는 美·유럽과 비교돼

11일(현지시간) NYT에 따르면 UAE는 백신 외교전에 적극 나서는 또 하나의 나라다. UAE는 백신을 빨리 확보해 접종하고 있는 나라다. UAE는 그러면서 중국 시노팜 백신을 구입해 5만 회분을 인도양의 소국 셰일셀, 중동의 우방인 이집트에 지원했다. 이집트는 시노팜 백신의 임상 시험 결과물에 대한 신뢰도 문제를 지적하며 접종을 미뤘지만, 석유부국 UAE는 적극적 백신 외교전을 동남아의 우방국인 말레이시아에도 펼쳤다.

말레이시아는 UAE가 제공하겠다는 50만 회분의 시노팜 백신에 대해 보건당국의 긴급사용 승인이 전제돼야 한다며 거부했다. 말레이시아는 대신에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에 이어 중국의 또다른 제약사 시노백의 백신을 수입해 접종하기로 했다.

백신 공급은 의도와 상관없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걸프인터내셔널포럼(GIF)의 다니아 태퍼 소장은 NYT와 인터뷰에서 “군대를 파병하는 대신 백신 공급으로 원조를 받는 나라의 경제와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WHO 등 국제기구가 나서 선진국들의 ‘백신 국수주의’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의 행보는 그만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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