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면세점 효자품목 '화장품'..슬픈 속사정은?

박예원 2021. 2.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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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관광'이 멈추다시피 한 지난해.
관광객이 있어야 사는 면세업계의 어려움은 컸습니다. 인천공항 이용자 수가 1년 전보다 83% 감소한 걸 고려하면 (7,117만 명 → 1,205만 명) 매출 타격은 피할 수 없어 보였죠.

그런데 통계에 의외의 숫자가 잡혔습니다.

면세점 매출 항목 가운데 오히려 늘어난 품목이 있었습니다.

■ 2020년 면세점에서 매출이 증가한 품목이 있다고?

통계청의 '2020년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액' 자료를 보면, 면세점의 화장품군 매출은 지난해 4조 9,421억 원으로 2019년 4조 8,608억 원보다 적게나마 늘었습니다.

이 액수는 출국하는 내국인이 온라인 면세점 몰에서 구입한 액수와 국내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외국인이 역시 온라인을 통해 구입하는 액수를 합친 겁니다.


■면세점 화장품, 누가 사 갔을까?

이 중 누가 매출을 떠받쳤을까요?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그중에서도 '다이궁'으로 불리는 중간 판매자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면세점의 온라인 매출을 국적별로 보면 5조 79억 원 가운데 4조 9,111억 원이 중국에 팔렸습니다.

연휴를 앞둔 서울 시내 면세점을 찾아가 봤습니다. 손님이 거의 없어 한산하다시피 했지만, 화장품 판매대에 드문드문 사람이 눈에 띄었고 그들 대다수가 중국인이었습니다.

이 면세점 관계자는 "관광객이 급감했지만, 중국인들은 지속해서 면세점을 방문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화장품, 그중에서도 피부관리 제품이라든지 클렌저 제품 등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 왜 자가 격리 감수하면서 한국 면세점에? "싸니까 믿으니까"

이들은 왜 한국을 찾을까요? 무엇보다 한국 면세점 화장품이 싸기 때문입니다.

IBK투자증권 안지영 연구위원은 "전 세계 어느 소매 채널보다 국내의 면세점이 수입 명품 브랜드 원가 경쟁력이 높고, 이 부분은 중국 수요에 특히 흡입력이 있다. 중국 현지 소비자가격보다 국내 면세점에서 40~5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면세점들이 고가 화장품 업체와 가격 협상을 잘한다는 얘깁니다.

한국 면세점 화장품=정품이라는 인식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 방문 시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감수하고라도 중국의 '큰 손'들이 계속 방문하는 이유입니다.

면세점 입장에선 어떻게든 손님을 잡아야 합니다. 지난해 면세점 연 매출은 15조 5,053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8%나 감소했습니다.

중국인의 화장품 구매마저 없었다면 더 크게 무너졌겠죠.


■정부도 나섰다 '수출 인도장' 운영

업계에서 '다이궁'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정부도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올해부터 '수출 인도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겁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수량/액수에 제한이 있었고, 출국할 때 모든 물품을 한꺼번에 가지고 나가야 했습니다.

수출 인도장을 이용하면, 두 달 동안 얼마든지 구매해서 출국 전에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부쳐도 됩니다. 중국 다이궁 입장에선 이보다 편할 수 없는 맞춤형 지원입니다.

다만 사전에 수출 인도장을 이용하겠다고 등록해야 하고, 면세점별로 자신의 회사에 등록한 외국인은 반드시 '출국시켜야 하는' 책임을 집니다.

이렇게 등록시킨 외국인들이 어느 정도 매출을 올려줄까요? 국내 한 면세점 관계자는 지난달 중국인 15명 정도가 등록했는데, 이들이 1,100억 원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귀띔했습니다.

한 사람이 백억 원 안팎을 사들이는 셈이죠.

■ 면세점 매출 중 화장품 비중 '80% 넘어 90% 육박'

다이궁들이 사들이는 화장품 매출이 이렇게 거대해지면서 전체 면세점 매출 가운데 화장품의 비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지난해 면세점 업계 연 매출 가운데 화장품 비중은 81%인데, 올해 들어 수출 인도장 제도 등으로 이 비중이 더 올라가면서 90%에 육박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입니다. 무척 이례적이죠.

모든 일에 명암이 있듯이 이런 상황이 반갑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 업계 생존이 소수에 달린 셈, 달갑지 않지만...

우선 소수의 중국인에게 업계 생존을 의지하는 셈이라, 면세점 업황이 한중 관계에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중국은 정책적으로 국내 면세점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이 여행 6개월 전부터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게 특혜를 제공하는 등 어떻게든 수요를 내수로 흡수하려고 하죠.

그렇게 손님이 빠지면 어쩌나, 한국 업계의 고민이 깊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소수 고객의 힘이 세지면 면세점의 협상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면세점들이 중국 여행사나 유통업체에 주는 송객수수료가 늘어날 수 있고, 마진이 줄어든다는 거죠.


평상시라면 '고객의 다변화 판매 채널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외칠 수 있겠습니다만 코로나19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 누구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분위깁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그 이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이 급선무인 국내 면세점 업계가 '화장품, 화장품, 또 화장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화장품 매출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증가하는 것은 코로나19 시대 관광산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박예원 기자 (ai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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