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동물원 생활] 마지막 이야기..토종동물 보호소를 꿈꾸다
지난 1년간 청주동물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동고동락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중 일부 동물은 건강하게 자연으로 돌아갔고, 또 일부는 동물원에 자리잡아 살고 있습니다. 동물의 상처를 치료하고 집 잃은 동물들의 새로운 거처가 되는 동물원은 청주동물원이 꿈꾸는 모습입니다.
집 잃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다
새해를 며칠 앞둔 12월 28일,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왔습니다. 광주 시내에서 미아로 발견된 새끼 너구리는 구조된 뒤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의 보호 속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너구리는 사람에게 길들여져, 야생으로 가면 적응하기가 힘든 상태였어요. 그래서 야생이 아닌 청주동물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육사들은 너구리를 위해 나무로 상자 모양의 굴을 만들었습니다. 너구리는 우리나라 토종 야생동물이라 굴 하나만 있으면 따로 난방을 하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지요. 너구리를 데려온 수의사는 우유량, 체중 증가량, 진료기록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지를 건네 주었습니다. 일지의 두께만큼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올해 1월 18일에는 새끼 오소리가 청주동물원의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보호 중이던 새끼 오소리였는데, 역시 사람 손길에 길들여져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웠습니다.
동물원이 재개장하면 많은 관람객들이 너구리와 오소리를 만날 겁니다. 동시에 이 두 야생동물이 미아가 된 원인과, 야생동물을 발견했을 땐 멀리서 지켜보다가 어미가 나타나지 않으면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신고해야 한다는 걸 알려 줄 예정입니다.
동물원에는 구조한 동물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농장에서 웅담 채취용으로 길러졌던 사육곰,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린 삵, 유리창 충돌로 눈을 잃어버린 말똥가리 등입니다. 모두 자연에서 생활하기 어렵고, 치료와 같은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입니다. 청주동물원은 이런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쉬며 건강을 찾을 수 있는 보호소를 꿈꿉니다.
건강한 동물, 자연으로 돌려보내다
동물원 물새장에는 백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주로 나무에 앉아 있었고,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때만 놀라서 물새장을 날았습니다. 백로를 처음 데려왔던 2000년대 초만 해도 동물원은 그저 사람들이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지금과 같은 거대한 물새장이 지어졌고, 전시할 새의 종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청주의 한 야생 백로 서식지에서 새끼 백로들을 포획해 데려왔습니다.
지난해 동물원은 백로가 들어온지 20년이 흘러서야 우리는 백로를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백로는 여름 철새인데 그동안 동물원에서 추운 겨울을 힘들게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또 거대한 물새장 안에서 날며 스스로 먹이를 잡아먹는 데 익숙해져서 자연에 나가 적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5월 22일 백로들을 종이 상자에 담아 싣고 충남 서산의 새로운 방사지로 향했습니다. 황새 방사 경험이 있는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먹이가 풍부하고 포식자 등 위험 요소가 적은 곳으로 정했습니다. 방사지에 도착한 뒤 주변을 둘러보니, 뒤에는 강이 흐르고 앞은 탁 트인 농경지가 있었습니다. 백로가 먹이를 구하기 편해 보였어요. 또, 주변 산에는 나무도 높아서 백로가 앉아서 쉬기에 적당해 보였습니다.
종이 상자 덮개를 열자 백로 24마리는 상자 밖으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곤 이내 하얀색 구름에 겹쳐져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동안 무거운 철망에 갇혀 있던 백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 백로들이 자연에서 행복하게 살길 간절히 바랍니다.
동물원에서 동물 복지 이야기를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2019년에는 야생동물 시티투어를 진행하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청주에 있는 야생동물센터, 동물원, 황새생태연구원을 돌며, 관람객들에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었습니다.
부상과 미아로 구조된 야생동물은 구조된 뒤 야생동물센터에서 치료받습니다. 이후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장애 동물은 동물원에서 보호받고, 신체 기능이 온전한 동물은 훈련을 통해 자연으로 다시 방사됩니다. 인간에 의해 부상을 입고 구조된 동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야생동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관람객들 또한 동물원과 여러 기관이 노력하는 모습에 매우 흡족해 하였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도 결국 인간이 자연 서식지를 무분별하게 침범하고 개발하면서 생겨난 것인데, 코로나가 종식되면 야생동물 시티투어를 다시 재개할 계획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청주동물원의 야생동물을 만나고, 동물원의 역할 등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야생동물인 고라니와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이유를 알아보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계획입니다.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면 소식 또 전하겠습니다.
※필자소개
김정호 수의사. 충북대학교에서 멸종위기종 삵의 마취와 보전에 관한 주제로 수의학박사를 받았다. 청주동물원과는 학생실습생으로 인연이 되어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진료사육팀장을 맡고 있다.
[김정호 수의사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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