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경제다]몸값 치솟는 기후위기 전문가들

김경은 2021. 2.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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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 RE100 캠페인 동참 의무화 압력
국내 대기업들, 고액 연봉에 ESG 전문가 영입 사활
기후·환경, 경제분석 연구대상 메인으로
미래 산업경쟁력 기후대응에서 찾아야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였습니다. 최우선 경영화두로 기후변화 대응이 소위 가장 ‘핫한’ 이슈가 된 것 말입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 제너럴모터스(GM) 등 200여개 글로벌 기업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RE100’ 캠페인에 국내 기업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제조사들이 의무화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시장’에서는 이미 기후위기는 심각한 경영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은 매년 제3자로부터 재생에너지 생산설비와 생산량에 대한 검증을 받고 추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캠페인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선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오후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
갑자기 ESG 경영?…전문가 어디없소

이 때문에 그동안 기업의 대척점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존재로 인식됐던 기후·환경 분야 전문가들의 몸값도 덩달아 올랐습니다.

비주류로 인식됐던 기후·환경분야에서 한 평생 연구해왔던 국내 대표 학자조차도 기업들로부터 이런 대접은 “25년여만에 처음”이라고 귀띔할 정도입니다. 지난 여름부터 강연 요청은 물론이고 자문과 연구 프로젝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연구소에만 머물렀던 제자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속속 대기업에 스카웃되는 것이 가장 반갑습니다. 공익의 가치에 헌신하는 청년들이 주류가 되어 사회를 이끌어가는 꿈꿔왔던 사회가 서서히 이뤄지는 것 같다는 겁니다.

경제계에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채용 시장까지 번지면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인재들이 시장에서 높은 수요로 인정받고, 이들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이 바로 ESG 경영의 지향점일 겁니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온 인재들이 시장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는 것. 이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이 늘어나야만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문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갑작스러운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것이 이들 전문가의 몸값을 키운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020 국제그린에너지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태양열을 활용하는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비주류에서 주류로 들어온 기후경제학

그간 기후나 환경은 경제 분석의 주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분야 연구는 과학적인 접근이 주를 이뤄왔습니다. 물론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합니다. 그동안 기후환경 연구는 기후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과학분야에 자원들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경영 전략 수립은 물론 재무 분석에서도 기후는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기업컨설팅·자문 기관인 회계법인이나 대형 로펌,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속속 ESG센터를 설립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빠르게 선점하고 있습니다.

주요 경제 포럼에서도 기후·환경이 메이저 세션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18년 노벨경제학상에 대표 주류경제학자인 폴 새뮤엘슨의 수제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가 기후변화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로 수상하면서 비주류로 치부됐던 기후경제학에 모멘텀을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거시경제학만 주구장창 연구해왔던 국내 주류경제학자들도 기후위기를 변방에 둬선 안된다는 공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이 이제 겨우 30대 중반의 박사급 인력에게 “우리는 ESG를 잘 모르니 책임지고 맡아달라”는 주문을 했다는 전언은 조금 씁쓸한 맛을 남깁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물론 정부와 우리 사회 전반이 글로벌 기후 대응 흐름에 너무 안일했습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비중은 4%대에 그칩니다. 100% 재생에너지만 쓰는 RE100을 달성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입니다. 태양광이 혐오시설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일부 있었고, 각종 제도적 장벽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술력은 충분히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있습니다. 다만 갈길이 바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탄소배출량의 90%는 에너지 소비에서 나옵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사업입니다.

최근들어 너도나도 RE100을 선언하고 나서는 우리 기업들이 쇄도하고 있고, 에너지 주무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형 K-RE100 도입을 선언하면서 부랴부랴 제도개선과 시장형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물론 산자부도 에너지 관련 학과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뒤늦게라도 산업경쟁력을 에너지 전환과 기후 대응에서 찾았다면 잰걸음으로 뒤쫓아 가야겠습니다.

김경은 (ocami8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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